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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전설, 항일 장령 무정 장군의 인생비화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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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라가평의 조선의용군 녀전사들. (자료사진)

란영이는 성격이 활달하고 활약적인 조선녀성으로 알려진다. 연극에서도 장끼를 보이였다. 태항조선혁명청년학교에서 매번 신입생을 환영하거나 여러 기념일에 문예공연을 가질 때면 란영은 의례 배우로 활약하였다. 류동호의 회고문을 보면 김창만 편극으로 된 대형연극 <조국의 딸> 녀주역과 호가장전투를 반영한 극 <태항산우에서>의 녀병사역도 란영이 맡아나섰다고 한다. 그 시절 태항학교에서는 자주 오락회나 야회를 가지였다. 그럴 때면 란영은 어김없이 나서서 30년대 눈물의 노래-<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그중 1절은 아래와 같다.


사공의 배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에 새악시 아롱진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전라남도 항구도시 목포는 일제에 의해 수탈된 호남의 기름진 쌀이 일본으로 실려가는 눈물의 항구였고 생계를 도모하고저 가족들과 헤여져야 하는 생리별의 부두였다. 이같은 일제수난기 우리 겨레의 력사와 시대상을 그대로 담은 목포의 눈물이기에 매번 란영이 이 노래를 부를 때면 강렬한 공명을 일으키군 하였다. 때론 무정도 참가하여 란영의 노래를 들으며 눈굽을 찍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1944년 음력설 직전 조선혁명군정학교로 개칭된 군정학교에서 일년사업총화를 가질 때 무정은 란영-김영숙이를 조선독립동맹 조직부 조직과 과장으로 임명한다고 선포하였다. 란영-김영숙은 그럴만한 혁명경력과 자격을 가진 조선녀성이였다. 마침 그해 1944년 3월, 일본군에서 탈출한 정철준(고철) 등 몇몇 열혈 조선청년들이 태항산근거지 하남점에 이르게 되였다. 그런 정철준은 김영숙이를 이렇게 그려내고있다.

(하남점의) 큰 거리를 벗어나 운동장같은 광장, 기실은 그 동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흰샤쯔에 진한 남색 양복바지를 입고 등뒤로 十자형으로 내리 건 멜방에 쌍태머리를 짤막하고 가쯘하게 짜르고 량쪽 팔소매를 걷어올린 나이 한 30이 될상싶은 얼굴이 하야말쑥한 녀성청년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보이는 회고자료들에서 유일하게 김영숙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자료라 하겠다. 여기에서 김영숙의 외모와 입은 옷들, 대략의 나이가 나타나 주의를 끄당긴다. 1944년에 나이 30살 쯤이면 1914~1915년 생 정도로 헤아려볼수가 있다. 그러면 1905년 생인 무정보다 약 10살 정도 어린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김영숙은 30살 정도가 아니라 20대 중반의 조선녀성이였다.

정철준 일행이 하남점에 이르자 선참 맞아주는 이가 김영숙이다.

“동무들이구만요. 수고했습니다.”

김영숙은 조선녀성답게 인사를 하며 그들의 손을 굳게굳게 잡아주었다. 그때 정철준 일행은 이 조선녀성이 조선독립동맹 조직과장임을 몰랐지만 팔로군내 조선동지들 대오에 “녀성동무도 있구나”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김영숙이 그들 일행을 골목길 지나 큰 거리 앞에 자리한 조선독립동맹 태항분맹 사무실로 안내하니 10여명의 조선동지들이 우르르 모이며 악수를 하며 열성적으로 맞아 주었다.

2~3일후 조선독립동맹 태항분맹구락부에서 정철준일행을 환영하는 대회가 열리였다. 정철준의 회고에 따르면 회장 정면에는 태극기가 정중히 걸려있고 ‘새동지입맹환영대회’라는 프랑카드, 량쪽으로는 ‘첩첩한 봉쇄선을 돌파하고 우리를 찾아오신 세 동무를 열렬히 환영한다’와 ‘일제의 강제학도병을 반대하여 일제병영에서 탈출한 세 동무를 환영한다’라는 구호가 내리걸리였다.

환영대회는 조직과장 김영숙의 사회하에 열리면서 구락부 주임의 지휘로 부르는 혁명가와 의용군행진곡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였다. 노래에 이어 김영숙이 정철준 등의 경력을 소개하고 입맹지원서를 랑독하였다. 김영숙을 따라 태극기 앞에서 두주먹을 부르쥐고 입맹선서를 하는 그들은 마음이 세차게 설레이였다. 정철준 등의 조선독립동맹 입맹, 조선의용군 참가가 통과되였으니 때는 1944년 3월 25일의 일이다.

환영대회는 무정의 총화보고로 이어졌다. 정철준은 무정사령원의 모습도 그리여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중키에 몸도 알맞춤하게 퉁퉁하고 상고머리를 가뜬하게 깎아올린 분이 군중의 박수소리속에서 연단에 올라섰다. 그는 책상우의 남포불을 가까이 놓고 돋보기를 꺼내들더니 수첩을 꺼내놓고 총화보고를 시작하였다. 어느 사이에 정리하였는지 우리 셋이 폭로해놓은 원시자료를 일제의 본질에 결부시켜 리론상으로부터 하나하나 총화해나아갔다. 음성은 낮으나 우렁우렁한 그의 목소리는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우리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더우기, 중공당사의 례를 들어 설명하는 3대각오-진정한 혁명자가 되려면 얼어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적의 총알에 맞아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그리도 인상적일수 없었다.

이튿날인 1944년 3월 26일, 조선독립동맹 태항분맹구락부에서 새동지 환영만회가 열리였다. 석유램프가 무대를 환히 밝히는가운데 만회가 시작되였다. 처음 절목은 <엉터리음악대>인데 조선독립동맹의 조직부와 선전부의 조직과장 김영숙을 비롯한 선전과장 양계, 재료과장 박무, 적군과장 고봉기 등이 주요배우들이다. 그들은 독립동맹의 골간간부들이자 선전고동자이고 배우이기도 하였다.

악기류 또한 희한도 하다. 기본악기가 하모니카와 퉁소라면 동네서 빌어온 중국식 대고와 제금, 죽판(竹板)에 두드리거나 흔들면 소리나는 별의별 물건이 다 나온다. 그에 걸맞게 혁명가로부터 시작하여 합창, 독주, 독창, 연극 구전하다. 양계의 <동지>라는 시랑송도 등장한다.

환영만회의 마지막 종목은 김창만 작인 단막극 <북경의 밤>으로 펼쳐진다. 독립동맹의 지하사업일군이 일본헌병대 고문실에서 적들과 최후의 투쟁을 벌리는 내용을 주선으로 엮어졌다.

그후 어느날 독립동맹 선전부장 김창만이 정철준을 찾더니 오는 단오절에 화북조선인민대표와 일본군내의 조선학도병대표들이 모여 일본반파쑈대회를 소집하니 극본을 하나 써보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이렇게 극본 하나 써보지 못한 정철준은 강제학도병으로 가정이 파탄되고 미혼처와 생리별하게 되는 내용을 주제로 극본쓰기에 나선다. 이같이 정철준은 김창만의 지지와 받들림으로 꼬박 사흘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며 2막으로 된 극본을 써내게 되였다. 그 다음은 꿈나라, 얼마를 잤는지 권혁(权赫)이란 친구가 깨우는 통에 일어나보니 조직과장 김영숙이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닭알을 수북이 담은 바가지와 서너근 되는 백설탕을 가지고 왔었다.

“닭알과 백설탕은 무정 동지가 보내신거야요. 닭알은 산 것이고 사탕가루는 조직에서 무정 동지에게 공급한 것인데 동무들이 수고한다고 보내주신것이죠.”

정철준은 황송하기가 그지없었다. 사탕가루는 조직에서 조선의용군 총사령인 무정 동지에게 공급한 것이라고하니 더구나 그러하다. 아무리 사양하여도 안되였다. 정철준은 조선의용군내 동지와 동지간의 마음, 사령원과 전사들사이에 서로 이어진 동지우애의 정신을 한껏 느끼였다. 온몸에는 끝없는 행복과 무궁무진한 용기과 힘이 샘솟았다.

어느덧 1944년 봄도 가고 여름도 가고 서늘한 9월이 다닥쳤다. 태항 군정학교의 학원수는 날로 늘어나 하남점에 있는 분맹의 집만으로는 다락방을 치우고 상하 이층생활을 해도 태반 부족이다. 군정학교는 새동지들을 맞을 경리부만 남기고 서남쪽 언덕 약 3리되는 남장마을 전에 쓰던 절당으로 이사하였다. 군정학교는 새간판을 내걸었다. 교장은 의연히 무정이고 교도주임은 김창만, 조직사업은 김영숙이였다. 정치교원은 양계, 박무가 맡고 군사교원은 서휘, 리익성, 한경(韩晶) 등이 맡았다. 기동에서 약 80명의 새동지들이 와서 합치니 대오는 착실히 200명을 웃돌았다.

이들 200여명 속에는 금방 태항산으로 온 안화응(安华应)이라는 젊은이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 안병진(安秉珍)은 조선과 중국, 쏘련 등지를 동분서주하면서 조선공산당의 창건과 재건을 위해 싸우는 이름난 조선혁명가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다가 1927년에 조선 신의주에서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여 10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1942년에는 점원으로 일하는 목재상점을 따라 천진으로 오면서 조선독립동맹 지하혁명가로 활동하게 되였다. 따라서 아버지를 거의 모른채 고향땅 둘째 아버지네 집에서 자라면서 겨우 중학공부를 마친 안화응이 1944년 봄에 아버지를 찾아 천진으로 오게 되고 1945년 봄에 혁명대오를 찾아 태항산에 이르게 되였다.

안화응이 태항군정학교로 온후 조직과장 김영숙이 그를 찾아 개별담화를 하였다. 개별담화에서 김영숙은 조선독립동맹을 대표하여 안화응의 아버지를 높이 평가(안화응. 향도자. 중국의 광활한 대지우에서. 연변인민출판사 출판, 1987년 8월 출판, 제447페지)하여 주었다.

“안병진선생은 일찍부터 조선독립과 조선공산당건설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헌신적으로 싸웠지요. 지금도 험악한 적구에서 우리와 련계를 갖고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을 위하여 많은 유익한 일들을 하고 계시지요.” 김영숙은 조용히 담화를 이어갔다.

“원래 동무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동무를 무정 동지가 지도하는 우리 태항산근거지로 보내려고 했지만 그 자신의 신분은폐에 불리할가봐 지금까지 미루어 왔지요. 이번에 현파(玄波)동지가 나선데서 동무는 무사히 태항산으로 오게 되였어요.”

김영숙은 안화응이 태항산으로 오게된 자초지종을 자상히 설명하여주면서 아버지처럼 훌륭한 혁명가로 되기를 바랐다. 동맹의 조직과장인 김영숙은 새로운 동지들이 올때마다 관련 분맹과 조직선을 통해 그들의 신분과 경력을 헤아리면서 조직의 순결성을 담보하여 나섰다. 이는 김영숙의 드팀없는 선차적인 과업이였다.

1945년 7월 1일에는 무정과 함께 조선독립동맹과 연안조선혁명군정학교이 연안 라가평에서 소집한 중국공산당창건 24돐기념대회에 참가(연안 “해방일보”. 1945년 7월 11일자)한 모습을 보이였다.

그뒤 태항산근거지의 8월 15일 저녁이다. 신입전사이고 학원인 정철준이 일찍 저녁식사를 마치고 벽보편집내용을 머리로 굴리면서 운동장을 서성이는데 김영숙이 헐레벌떡 교문안으로 달아가고있었다. 정철준을 보고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였다. 방금 식사를 끝낸 동지들이 우르르 조선족 정모 김영숙이 종이장을 흔들면서 흥분을 터뜨렸다.

“지금 신화사에서 전문이 왔는데 일제가 동맹국에 무조건 투항했대요.”

“와-” 탄성과 함께 만세소리가 터져올랐다. 서로들 부둥켜안고 껑충껑충 뛰며 돌아갔다.

“그게 정말이예요?”

“그럼 정말이 아니고. 동무만 혼자 태항산에 남겠어요?”

정철준의 어린애같은 물음에 김영숙은 깔깔 웃어댔다. 김영숙은 조선녀성다운 풍모에 활발한 성격을 가지여 동지들가운데서의 인기도가 언제나 만점이였다. 그녀가 나타나는 곳에는 웃음소리가 터지고 분위기가 자못 활기를 띠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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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의 통신원으로 활동했던 왕안순과 그의 안해. (2009년 8월 현지촬영)

제 16부 광복 전후

조선만주공작위원회

무정은 조선(한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평생을 바쳐가는 사람으로서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중국혁명에 투신하면서도 항상 조선의 해방을 념두에 두고있었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의 래일이 멀지 않았다, 가까워오는 조선혁명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조선독립동맹 여러 분맹의 활동과 더불어 조선국내와 중국 동북쪽에도 폭넓게 살손을 대였다. 그 실제행동이 1944년 9월에 3명의 동지를 책임자로 하는 ‘조선과 만주공작위원회’(鲜洲工作委员会)를조직한것이다. 따라서 조선국내에 2명의 지하공작자를 파견하였다. 그들의 과업은 국내에 분맹조직을 내오면서 적들의 조선에서의 징병을 반대하는한편 독립의 힘을 키워가는것이였다.

무정이 기초한 1944년 1월부터 1945년 5월까지 화북조선독립동맹 사업경과보고에 따르면 일제놈들의 통치와 략탈, 감시가 따르는 조선(한국)의 현실에서 도시로부터 농촌으로 발전하기로 하고 조직형식면에서 일률적인 독립동맹 분맹과 소조형식을 취하지 않고 여러 합법적인 조직과 어용조직을 리용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에 따라서 지하공작의 중점을 조선(한국) 북쪽과 서쪽에 두고 활동의 중심을 서울을 중심으로 하였다. 먼저 서울-회령쪽 선과 경원선(京元线), 함경선(咸镜线), 길회선(吉会线) 등 철도와 부근 도시들에 활동거점을 잡았다. 다음 서남방향의 농촌으로 발전하였다. 서쪽면의 지하공작에서는 경의철도(京义铁路)와 부근의 도시들에 활동거점을 박았다.

무정은 국내에 지하공작자를 보내여 일찍 독립운동에 나선적이 있는 동지들을 찾는데도 큰힘을 들이였다. 먼저, 중국대혁명이 실패한후 자기와 같이 일찍 중공상해조선인지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여 조선국내 감옥에 투옥되고 석방된 로동지들을 찾게 하였다. 다음은, 무정이 중국으로 진출하기전 조선에서 같이 독립운동을 하였지만 지금까지 변절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 다음은, 무정의 옛 동창들이였다.

무정의 사업경과보고에는 1944년 6월에 상해조선인지부에서 서기로 활동했던 동지를 찾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무정의 사업경과보고에 따르면 이 동지는 1930년에 상해에서 적들에게 체포된 후 일제령사관을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되여 7년형을 받았고, 석방된 후 서울부근의 한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비밀활동을 벌리고있었다. 여러 면의 자료고증을 통하여 무정이 말하는 이 동지가 려운형이라는것이 밝혀졌다. 려운형 관련자료에 따르면 사실 상해에서의 려운형의 체포는 1930년이 아니라 1929년 7월이며 혐의는 독립운동지원으로서 상해 주재 일본령사관 경찰부에 체포되였었다. 복역도 7년이 아니라 4년이였다.

려운형(吕运亨,1886.5-947.7)은 경기도 양평군 출신으로서 1900년배재학당(培材学堂)에서 기독교를 접하며 활동하다가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하게 되였다. 그는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1914년 겨울 결연히 중국으로 와서 장로교 선교회가 운영하는 남경금릉대학(南京-陵大学)에서 3년간(28-30세) 영문학과 철학을 배웠다. 1916년에는 상해로 가서 협화서국서점에 취업하면서 선교사, 인성학교 교사, 려행대행업 등을 했다.

1918년 상해에서 장덕수(张德秀)를 만나면서 정치와 독립운동에 관심을가지기 시작했으며 신한청년당(新韩靑年党)을 발기하였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림시정부가 조직되자 림시의정원(临时议政院)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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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도 티가 있듯이 사람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고속렬차에서 흡연시 180일내 기차 탑승 제한
사진출처 인터넷
올해 5월 1일부터 고속렬차에서 흡연하거나 기타 렬차의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등 철도 운행안전과 생산안전에 엄중한 영향을 끼친 행위에 대해 기차탑승을 제한하며 180일내 각 철도 운수기업은 해당 책임자의 기차표 구매를 제한하게 된다. 최근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사이트에서는 을 발표해 엄중하게 신용을 잃은 일부 사람이 기차를 탑승하는 데 대해 상술한 규정을 내렸다.

어떤 행위가 기차 탑승을 제한받게 되는가? ‘의견’에서는 철도 운행안전과 생산안전에 엄중한 영향을 끼친 행위책임자가 공안기관에 의해 처벌받았거나 혹은 철도역 차량 단위에서 인정한 7가지 행위를 저지른 행위책임자에 대해 기차탑승 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7가지 행위는 다음과 같다.

1. 철도역 차량 운수질서를 어지럽히거나 철도안전에 위험이 미쳐 엄중한 사회 불량영향을 조성한 행위.

2. 고속렬차에서 흡연하거나 혹은 기타 렬차의 흡연구역에서 흡연한 행위.

3. 차표를 암거래하거나 가짜표를 만들어 판매해 적발되였을 때.

4. 할인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신분증을 도용하거나 또는 위조 혹은 무효처리가 된 할인대우 신분증을 사용하여 차표를 구매해 승차한 행위.

5. 위조하거나 기한이 지난 무효 차표를 지니거나 혹은 분실신고 차표를 도용하여 승차한 행위.

6. 무표 승차 혹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후 차표 보충구매를 거절한 행위.

7. 관련 법률법규에 의해 행정처벌을 받아야 하는 행위.

 
기차탑승을 제한하는 기한은 얼마나 될가? ‘의견’에서는 행위책임자가 철도 운행안전과 생산안전에 엄중히 영향을 준 관련 행위 제1~3조, 제7조에 대해 각 철도운수기업은 차표구매를 제한하고 유효기간은 180일이며 기한을 공포해 유효이의가 없는 날부터 계산하여 180일후 기한이 자동적으로 제거되며 철도운수기업에서는 그에 대한 차표발매를 회복한다.

행위책임자가 철도 운행안전과 생산안전에 엄중한 영향을 준 관련 행위 제4~6조에 대해 각 철도운수기업은 차표구매를 제한한다. 행위책임자가 모든 차표 미불금을 충당한 후(표값을 충당한 다음날부터 계산), 철도운수기업에서는 그에 대한 차표 발매를 회복한다. 행위책임자가 첫번째 미불금을 충당한 후 1년내에 상술한 4~6조의 행위가 3차례 발생하면 행위책임자가 모든 차표 미불금을 충당한 90일후(90일 포함) 철도운수기업에서는 차표발매를 회복하며 모든 차표 미불금을 충당하지 않으면 철도운수기업에서는 그에 대한 차표 발매를 회복하지 않는다.
본지종합

 
소비자 15일내 선불금 돌려받을 수 있어

일전 중국소비자협회는 현재 립안 단계에 있는‘전자상거래법’을 통해 전자상거래 분야의 보증금, 선불금 환불 관련 문제점을 해결하여 소비자들의 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부분적 전자상거래 경영인들이 자전거 공유, 인터넷 차예약 등을 미끼로 소비자들로부터 보증금, 선불금을 받은 후 자금을 착복하고 부당한 경영으로 영업을 중지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중국소비자협회는 이에 대해 소비자로부터 보증금 혹은 선급금을 받을 수 있는 전자상거래 경영인은 법인 혹인 비법인 조직의 조건을 구비해야 하고 관련 행정 부문의 허가를 받을 것을 건의했다. 전자상거래 경영인은 상업은행 혹은 기타 지급 기구의 ‘예약권한’ 동결 방식을 리용하여 보증금을 받고 보증금은 입찰 상품의 실제 가격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보증금이나 선불금을 받은 전자상거래 경영자는 국가에서 규정한 보증 보험, 은행신탁, 제3자 담보 등 취소가 불가능한 담보를 제공해야 하며 담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보증금, 선불금을 받을 수 없도록 명기했다.

중국소비자협회는 또 보증금 환불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소비자는 보증금을 지급한 후 15일내에 무리유 환불을 요구하거나 ‘예약권한’해제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할 것에 대해서도 제기했다.
종합

 
우리 주 귀향창업 대출 사업 가동
16일, 주귀향창업 전문대출 사업이 정식 가동됐다. 창업인은 최대 30만원까지 대출할 수 있으며 대출 기한은 가장 길게 3년까지이다. 2015년 8월, 우리 주에서는 귀향창업 프로젝트를 가동한 이래 이를 전 주 '대중창업, 만중혁신' 사업을 추동하고 토대를 강화하여 인민을 부유의 길로 이끄는 프로젝트의 전략적인 방법으로 간주하여 추진해왔다. 귀향창업의 건전하고 빠른 발전을 제약하는 융자를 받기 어렵고 원가가 높은 등 문제점을 겨냥해 주당위, 주정부에서는 공청단, 부련회, 인력자원및사회보장, 공업및정보화 등 부문의 창업부축 자금을 통합하여 융자난을 해결하는데 진력했다. 또한 진일보로 금융봉사 플랫폼의 작용을 발휘하고저 기존의 정책을 바탕으로 '주귀향창업전문대출사업'을 가동했다. 현재 주적으로 1만 9226명이 귀향하고 2만 893명이 귀향 의사를 밝힌 가운데 1만 3661명의 귀향인들이 창업하고 이로 인해 5만 2167명의 취업을 견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주에서 귀향창업인원에게 제공한 각종 창업부축자금과 대출은 루계로 1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료해한 데 의하면 한번의 대출 금액은 30만원을 초과하지 않으며 대출 기한은 1년에서 3년까지이다. 담보 방식은 저당담보, 보증담보 등을 포함하고 대출 리자는 기준 리자률을 적용한다. 대출은 신청, 담당 부문의 초심, 담당 은행의 재심, 대출 계약 체결 등 절차를 밟게 되며 상환은 실지 정황에 근거해 원금에 따른 리자 상환, 등액원금리자 상환, 분기별로 리자를 상환하고 기한내에 원금을 갚는 등 방식으로 대출인과 은행에서 협상하여 확정할 수 있다. 종합
90세 이상 양로보조금을 어떻게 탈 수 있습니까?

90세 이상 양로보조금을 어떻게 탈 수 있습니까?
문: 연길시에 살고 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가 올해 5월 90주세가 됩니다. 90세부터 양로금을 준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가서 어떻게 수속하면 되는가요? 1월부터 4월사이 양로금은 탈 수 있는가요? 답: 생일에 관계없이 1928년에 출생한 로인은 올해 모두 90세이상 경로금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2대신분증, 호구부, 본인이름으로 된 농촌상업은행 통장 혹은 카드를 가지고 호적소재 촌 혹은 사회구역을 찾아 취급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가거나 혹은 보호자가 대리취급할 수 있습니다. 1월부터 4월사이 경로금은 보충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신분증유효기간 만료전에 새 신분증 신청할 수 있나요?
문: 신분증 유효기간이 곧 만료됩니다. 새로 취급하려면 만료하기전에 앞당겨 신청할 수 있는가요? 룡정시 신분증인데 연길시에서 취급할 수 있습니까? 답: 신분증 유효기간 만료하기 한달전에 새로 신분증을 취급신청할 수 있습니다. 룡정시 정무대청에 가서 취급할 수 있습니다.

연길시 영빈교 동쪽에서 우회전하려면?
문: 연길시 영빈교에서 동쪽으로 달리다 신호등에서 우회전하려면 푸른 신호등을 기다려야 하나요? 로면에 표시선이 그려져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답: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지 않고 우회전할 수 있지만 정상통행하는 차량과 행인의 통행안전을 담보하는 전제하에 우회전할 수 있습니다.

주민집 장식시간은 규정이 있나요?
문: 웃 집 주민이 아침 다섯시반부터 장식을 하고 있어 다들 의견이 많습니다. 주민집을 장식할 때 장식시간을 시간에 관한 규정은 없는가요? 답: ‘중화인민공화국환경소음오염방치법’제58조규정에 근거하여 공안부문 관리범위에 속합니다. 이웃과 의견을 제기하여 협상이 되지 않으면 공안부문에 제보할 수 있습니다.

언덕이 너무 높아서 주차할 수가 없습니다.
문: 연길시에서 길옆 인행도로에 주차위치를 설치해놓았는데 언덕이 너무 높아서 차가 올라갈 수 없습니다. 개선할 계획이 없나요? 답: 연길시의 주차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로옆과 인행도로에 주차위치를 설치하였습니다. 일부 교통시설이 합리하지 않고 완벽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건설부문에서 일부 도로에 대해 개조를 시작하였습니다.   한옥란 기자  
지난 주 생필품 가격 안정, 공급 충족
사진출처 인터넷
일전 주내 8개 현, 시 상무국에서 량식, 남새, 가금류 등 13가지 생활필수품 가격에 대해 측정한 결과 지난 주 우리 주 생활필수품은 공급이 충족하고 시장 운행이 량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주와 비교해보면 3가지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고 2가지 상품의 가격이 보합세를 보였으며 8가지 상품이 정도부이하게 하락했다. 평균 가격 상승폭은 6% 이하, 평균 가격 하락폭은 7% 이내에 달했다. 이중 입쌀 등 곡류와 콩기름 가격은 전 주에 비해 보합세를 보였고 육류중 돼지고기 가격은 5.3% 하락, 소고기 가격은 0.8% 하락하고 양고기 가격은 0.2% 가량 상승했다. 가금류 중 닭고기 가격은 전 주에 비해 0.2% 상승하고 닭알 가격은 6.1% 하락했으며 남새가격은 오이 가격이 11.2% 하락한 외 기타 남새는 가격파동이 작고 시장공급 또한 충족한 것으로 검측됐다.

지난 해 동기 대비 10가지 상품 가격이 정도부이하게 상승했는 데 상승폭이 20%에 달하는 상품은 3가지, 10%내지 20%에 달하는 상품은 4가지, 10% 이하에 달하는 상품은 3가지로 나타났다. 가격이 하락한 3가지 상품 중 가격 하락폭이 가장 두드러진 상품은 돼지고기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3.1% 하락했다.

주상무국은 계절성 변화로 남새시장 공급이 충족하고 가격 또한 하락세를 보였으며 가금, 가금알류, 량식류, 육류 가격이 모두 안정된 궤도에 들어서면서 우리 주는 시장가격 파동이 작고 공급이 충족한 형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화 기자

 
 
연길시병원 타성간 격지진료 직접결산 실현
16일, 흑룡강성 목단강시 퇴직 종업원인 강호송(77세)은 연길시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마쳤다. 출원수속할 때 그는 결산창구에서 사회보장카드로 입원비용을 직접결산했다. 이는 해당 병원에서 처음으로 타성간의 격지진료 직접결산을 실현한 사례이다. 얼마전 강호송은 당뇨병 합병증으로 연길시병원 내분비과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였다. 의료일군은 환자에게 카드 소지 등록 수속을 하고 의료보험시스템에 올리는 등 관련 절차를 마쳤다. 16일, 강호송은 병세가 호전되고 퇴원할 수 있게 되였다. 퇴원 수속을 할 때 강호송은 연길시병원 격지 의료보험 결산창구에서 사회보장카드로 입원비용을 직접결산했다. 강호송은 “예전에는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진료기록, 령수증을 가지고 다시 목단강시로 돌아가 결산받아야 했습니다. 연길시병원에서 퇴원하고 병원에서 바로 결산하게 되여 너무 편리합니다.”라며 타성, 타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퇴직 종업원과 가족들이 병을 보이는 데 진정한 편리를 제공해줬다고 말했다. 연길시병원 의료보험관리과 방정화 과장의 소개에 의하면 연길시병원은 지난해부터 타성간의 격지진료 의료비용 직접결산 플랫폼과 련결하고 격지진료 군중들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김설 기자  
연길시 중대대상 속속 시공
봄을 알리는 계절 4월에 연길시의 중대대상들이 륙속 착공을 알리거나 공사를 재개해 한창 차근차근 순탄하게 건설중이다. 올해 연길시 ‘세가지 조기 시행’대상은 도합 11개로서 총투자액은 48억 2400만원에 달하고 년간 계획완성투자액은 12억 8700만원에 달한다. 그중 신축 대상은 7개, 총투자액은 41억 1400만원, 년간 계획완성투자액은 11억 3800만원에 달하고 새로운 준공대상은 4개로 총투자액은 7억 1000만원, 년간 계획완성투자액은 1억 4900만원에 달하며 전부 산업대상이다. 연길시는 대상건설의 ‘세가지 조기 시행 틀어쥐기’ 사업배치를 일층 관철, 시달하기 위해 중대대상을 정리, 종합하고 일일이 주관지도자와 책임단위, 대상책임자를 확정하여 상반기 신축대상의 착공률을 80% 이상, 추가건설 대상의 공사 재개률을 90% 이상에 달하도록 확보했다. 총투자액이 5000만원에 달하는 조양천진 태흥촌, 아름다운 향촌, 건설 대상은 이미 4월 1일에 착공했고 올해 50가구의 주택과 4500평방메터에 달하는 촌민위원회 활동실, 6만평방메터의 중심광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년간 생산량이 5000톤에 달하는 중약재한약, 연길데이터호 기초시설, 연길커시안의료기계유한회사 새 공장 확장건설, 연길 만달가화호텔 등 4개 대상은 이미 전단계 수속을 마치고 착공조건을 구비해 곧 기공하게 되며 총투자액이 20억원에 달하는 신에너지자동차대상은 이미 계획 토지 등 준비수속을 마쳤고 인삼교역시장 대상은 이미 등록, 토지임대 등 수속을 거쳐 4월말이면 착공건설을 시작하게 된다. 년간 생산량이 400톤에 달하는 보건품, 령지포자가루 등 보건품 생산, 생물과학기술계렬 보건품 생산(1기), 식품산업단지 등 4개의 새로 준공된 대상은 상반기에 생산에 투입될 예정이다. 윤녕 기자
다원화된 선택, 변화하는 ‘90후’의 취업태세
10일, 연길시인력자원및사회보장국에서 열린 대중도시 대학졸업생 련합초빙회에서 채용공고를 둘러보고 있는 구직자들.  
진로 재탐색 위해 ‘느린 취업’선택하기도   교육부가 발표한 올해 우리 나라 보통대학 본기 졸업생은 820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치렬한 취업전쟁이 불가피한 가운데 지난 10일, 연길시인력자원및사회보장국에서 열린 대중도시 대학졸업생 련합초빙회에는 이제 막 취업경쟁에 뛰여든 예비 사회초년생들의 가담으로 풋풋한 분위기를 띠였다. 길림공상학원 졸업생 93년생 섭모는 분주한 인파속에서 채용공고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미디어학을 전공한 섭모는 자신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광고 기획과 관련된 업종을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배운 전업을 선택하면 잘 할 자신이 있고 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발전 전망이 좋은 일터에서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잘 발휘한다면 월급은 자연스레 오르지 않을가요?”라고 반문하는 그녀는 직업 선택에서 자신의 재능과 가치를 뽐낼 수 있는‘자아실현 가능성’을 1순위에 두었다. 학전교육을 전공하고 현재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는 95년생 윤모는 고도의 주의력과 세심함을 요구하는 은행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근무환경을 바꿔보고 싶어 이날 초빙회를 찾았다고 했다. 윤모는 “야간근무가 많고 억압되고 딱딱한 근무환경은 싫다. 정시에 출근하여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추구한다.”고 답했다. 월급에 관하여 묻자 윤모는 딱히 정해둔 기준이 없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협상의 여지가 크다.”고 답했다. 올해 연변대학을 졸업예정인 95년생 김모 역시 이들과 비슷한 취업성향을 띠고 있었다. “높은 급여보다는 자신의 흥취와 적성에 맞는지가 제일 중요하며 대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넓은 발전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신생기업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흥취, 자유, 성취감 등 ‘자아 감수’가 다분히 반영된 이들의 취업성향. 실제로 ‘본기 졸업생 구직사이트’에서 2018년 본기 졸업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구직정황조사에서도 이런 성향이 반영되였다. 조사에 의하면 21%의 응답자가 구직에서 급여를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52%의 응답자가 적성과 흥취를 더욱 중요시했으며 43%의 응답자가 발전기회와 자아성장은 구직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필수 요소라고 밝혔다. 대학졸업생 련합초빙회에 일군을 모집하러 온 북경 모 자산관리회사의 인사담당자는 “80후인 나또래는 직장을 생계유지 공간으로 여기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데 비해 90후 세대의 직업관은 확연히 다른 것을 느끼고 있다. 90후는 직장이란 응당 자아가치를 실현할 수 있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고 초빙사업에서 느낀 바를 전했다. 반면 직장에서의 활약면에서는 “무언가를 대범하게 시도하려는 자신감은 뛰여나지만 끈기가 부족한 것 같다.”고 밝혔다. 취업 성향이 여러가지로 나뉘는 한편 취업을 할지 말지에서도 엇갈린 선택이 존재했다. 곧 장춘의 모 대학을 졸업하는 95년생 장모는 곧바로 취업대렬에 합류하지 않고 졸업과 취업 사이에 ‘간극’을 두기로 했다. “조바심이 들지만 무작정 취업하기 보다 려행을 통하여 시야를 넓히고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밝힌 장모가 선택한 것은 이른바 ‘느린 취업(慢就业). ‘느린 취업’이란 일부 대학졸업생들이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하거나 학업을 지속하지 않고 려행, 자원봉사, 창업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진로를 재탐색하는 것을 말한다. 조사표본이 10만명에 달하는 ‘2017년 대학생 구직지침서(2017年大学生求职指南)’에서도 73.5%의 응답자가 졸업 후 취업을 선택하는 반면 26.5%의 응답자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중 9.8%가 졸업후 학업과 직업 찾기를 잠시 중단하고 졸업과 취업사이에 ‘간극’을 갖겠다고 답했다. ‘느린 취업’에 대해 국가직업지도사 장옥분은 한 인터뷰에서“과거의 ‘70후’, ‘80후’들에게는 비교적 큰 경제압력이 작용했다. ‘졸업은 곧 취업’을 의미했는데 그래야만 대도시에서 집을 장만하여 결혼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 ‘90후’들은 독신자녀이고 가정경제조건이 우월하여 돈에 대해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 반면 자아발전을 추구하며 마음에 드는 직업을 찾기 전까지 기다릴지언정 타협하지 않으려 한다. 또한 사상이 개방적이고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많아 ‘일인미디어 제작(自媒体)’, ‘인터넷 스타(网红)’ 등 다원화된 취업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생활하길 바랄 뿐이며 가정에 심각한 경제부담을 초래하지 않으면 지나치게 책망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글·사진 김향성 심연 기자
 
불타는 집념이라야 돌에 령혼을 새길 수 있다
평범한 ‘돌멩이’도 그의 눈에는 ‘보석’으로 보인다. 붓과 조각칼로 송화석에 문화와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화시 단강거리 문화쎈터에서 송화석벼루 공예미술산업 발전을 추진하고 있는 림지덕이 그 주인공이다. 림지덕은 현재 연변석목현문화발전유한회사 법인, 길림성 공예미술협회 리사장, 돈화시 공예미술협회 부회장 등 직책을 겸임하고 있다. “하나의 작은 돌에도 생명이 있습니다. 불타는 집념이라야 돌에 령혼을 새길 수 있다는 걸 실천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림지덕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어려서부터 서법, 미술, 조각에 관심이 많았던 림지덕은 지난 30여년간 오로지 한 우물만 파왔다. 길림성 공예미술대가인 림지덕의 작품은 일찍 ‘길림성 공예미술백화컵’금상, 은상, ‘제1회 송화석문화관광절 송화석예술대전’금상, ‘제4회 중국(장춘) 동북아문화예술박람회’금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림지덕은 석자재의 자연형태, 색채 및 무늬에 독특한 구상을 교묘하게 주입시켜 돌 하나하나에 생명과 아름다움을 불어넣었다. 그의 조각작품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고스란히 깃들어있었다. 2014년, 림지덕은 오래된 경험을 바탕으로 연변석목현문화발전유한회사를 설립, 본격적으로 창업에 나섰다. 1200여평방메터 되는 회사에는 현재 30여명의 직원이 림지덕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그는 기업운영에 주력하는 한편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지니고 가두 퇴직인원, 실업인원, 장애인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취업기능을 높여주었는데 지금까지 50여명에 달하는 벼루조각 인재를 양성한 가운데 1명은 ‘성급 예술대사’의 영광을 지녔다. 림지덕의 회사는 기획, 창의로부터 조각, 포장,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부 규범화 관리를 하고 제남, 무한, 북경 등 지역에 전문 전시청을 설립해 홍보와 판촉을 활성화한 보람으로 국내 동업종은 물론 대만 지역과 일본 등 나라의 예술애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림지덕은 ‘장인정신은 문화전통을 계승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라면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송화석 벼루 조각품은 예술작품일 뿐만 아니라 중화 전통문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남다른 애착이 깃들어있다.”고 말했다. 최복 기자
연길 문명한 교통환경 조성에 주력
사진은 하남신호등구역에서 오토바이와 전동자전거 운전자의 안전헬멧착용여부,운전면허증,행차증 등을 검사하는 모습이다. 18일, 연길시공안국 교통경찰대대에서는 횡단보도 양보와 오토바이, 전동자전거에 대한 집중전돈활동을 펼쳤다. 하남신호등구역에서는 오토바이와 전동 자전거운전자의 안전헬멧착용여부, 운전면허증, 행차증 등을 검사하고 위법 운전자에 대해 현장 처벌을 안겼다.연하소학교 십자로에서는 아이들에게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의 주의점에 대해 설명해주고 직접 인도하면서 횡단보도를 혼자 건널 수 있도록 연습을 시켰다. 연길시연하소학교 5학년 류가호 학생은“교통경찰의 설명을 통해 교통안전지식과 횡단보도를 건늘시의 주의점에 대해 배웠습니다. 금후에 경찰이 가르쳐준대로 길을 건너고 도로에서 장난치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부모님들한테도 평시에 운전할시 행인들에게 양보하도록 전해줄 것입니다.”고 말했다. 연길시공안국 선전중대 중대장 조영의는“오토바이와 전동자전거 운전자들은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관련 법규를 준수하며 교통경찰의 지시에 따라 주행해야 한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도로에서의 관리통제를 강화해 조화로운 도로환경을 조성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연길시공안국 교통경찰대대는 4월부터 12월까지 지속적으로 행인, 오토바이, 전동자전거에 대한 정돈활동을 펼치게 된다. 글·사진 강철 기자  
화룡 진달래관광축제 맞춤 관광선로 곧 개통
화룡 진달래관광축제 자료사진. 오는 21일부터 연길시에서 화룡시 서성진 진달래촌에 이르는 관광선로가 정식 개통되여 축제의 장을 찾는 시민들이 교통으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게 됐다. 일전, 연변동북아려객운수집단에서 료해한 데 따르면 4월 21일부터 ‘중국·화룡 제10회 장백산진달래 국제문화관광절’을 맞아 연길에서 화룡시 서성진 진달래촌에 이르는 관광선로를 개통하여 관광절 시리즈 축제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편리를 도모하게 된다. 이번 관광선로는 4월 21일부터 5월 1일까지 개통되며 ‘연길-진달래촌’과 ‘연길-선경대’ 등 두개 코스로 나뉜다. ‘연길-진달래촌’코스는 아침 8시에 려객운수소(북역)와 동북아려객운수소에서 출발하여 룡정3중역을 지나 진달래촌에 도착하며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하여 연길로 돌아오게 된다. 주행 시간은 한시간가량 소요되고 표가격은 편도는 15원, 왕복은 30원이다. ‘연길-선경대’코스는 아침 8시에 려객운수소(북역)와 동북아려객운수소에서 출발하여 룡정3중역을 거쳐 오전 10시경에 화룡선경대에 도착하게 되며 오후 2시 30분에 출발하여 귀로에 오르게 된다. ‘연길-선경대’코스의 표가격은 편도는 30원, 왕복은 60원이다. 승객들은 연길려객운수소(북역), 동북아려객운수소, 조양천려객운수소, 룡정려객운수소와 씨트립넷, BUS365넷을 통해 ‘중국·화룡 제10회 장백산진달래 국제문화관광절 맞춤코스’ 차표를 구매할 수 있다. 한편 화룡선경대 자연풍경구는 주내외 광광객을 대상하여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전 풍경구를 무료로 개방하게 된다. 강화 정군 기자
‘3D 프린터’로 건설한 공공주택 등장
3D 프린터로 지은 세계 최초의 공공주택이 프랑스 낭트시에서 공개됐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낭트시는 낭트대 등과 협력해 3D 프린터 기술을 활용해 일반 건축 방식보다 훨씬 저렴하게 지은 공공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첫번째 거주자는 낭트시 공공주택 리용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 주민으로, 한 가족으로 알려졌다. 입주 시기는 오는 6월이다. 이번 공공주택에 독자적인 3D 프린터 기술을 사용한 낭트대 연구진은 현장에서 직접 주거 목적으로 3D 프린터 로보트를 활용해 건축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낭트대 연구진이 개발한 3D 프린터 ‘베티프린트3D’는 길이 4메터의 로보트 팔을 레이저 유도 방식으로 미리 그려진 모형에 따라 다양한 건축재료를 퇴적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일반적인 3D 프린터 건축에서는 혼합한 한가지 재료를 리용해 증축하지만 이번 주택을 건축하는 데는 세가지 류형의 재료가 각각 사용됐다. 특히 이번 주택에는 100년간 절연성이 유지되는 특수 폴리머(聚合物)가 쓰였고 벽면은 우리에게 친숙한 콩크리트로 채워졌다. 내부 인테리어를 제외한 건축 기간은 18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브누아 퓌레 낭트대 교수는 “주택을 현장에서 건설하는 로보트 덕분에 복잡한 형태의 벽을 쉽게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Y자 형태로 지어진 이번 주택은 총면적 95평방메터로, 방은 5개다. 공기 상태와 습도를 감시하는 다중 센서와 건물 온도 특성을 분석하는 기기도 설치됐다. 이 기술은 에너지를 절약해 비용을 절감해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낭트시는 앞으로도 공영 주택 등 건축물을 건설하는 데 3D 프린터 기술을 활용해나갈 계획이다. 외신
장인정신으로 행복하고 고품격 원림 이뤄내
14일 오전 9시경, 화룡시주택및도시농촌건설국 원림관리처 부처장 후경풍은 도급촌의 빈곤호들을 찾아 위문하고 화룡시인민검찰원 서쪽 도로구간에서 나무재배 정황을 답사했다. “이 들메나무는 어제 외지에서 운송하여왔기에 반드시 서둘러 심어야 됩니다. 아니면 활착률이 떨어질 것입니다.” 후경풍이 말했다. 올해 45세인 후경풍은 명쾌하고 결단력 있는 녀성간부로서 27년간 원림사업에 종사했다. 가랑비 아래에서 그녀는 묘목을 관찰하는 한편 일군들에게 재배를 지도하고 있었는데 신발과 바지가랑이에는 흙탕물이 얼룩졌다. 하지만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원림분야에 종사하면서 매일같이 흙, 화초와 접촉하기에 치마와 하이힐과는 리별하게 되였습니다. 우리가 바로 새시대 농민이죠. 뭐든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2006년, 후경풍은 화룡시의 록화공사 설계와 시공을 책임지게 되였다. 10여년 동안 그녀는 모든 정력과 지혜를 도시의 록화 설계에 쏟아부어 시민들이 만족하는 원림작품들을 배출했다. 전 시의 원림관리를 책임진 뒤 그녀는 ‘록화는 유지가 중요하고 3할의 재배와 7할의 관리’라는 록화 사로를 제기하여 원림록화의 자원원가를 최대한으로 절약했다. 후경풍은 학자형 간부로서 병충해의 예방치료, 록화유지, 록화공사 설계 등 면에서 독특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녀는 30여개의 정원, 소구역과 공공록지 록화대상을 설계, 시공했는데 조형이 아름답고 기품이 웅대하여 시민들의 전면적인 승인을 얻었다. 2012년, 화룡시는 처음으로 ‘국제마라톤경기’를 주관하게 되였다. 사람들에게 화룡시의 록색생태 특징과 농후한 인문환경을 보여주기 위해 후경풍은 묘포기지에서 일하던 도중 높은 곳에서 떨어져 왼쪽 발목이 골절되였다.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그는 손의 일을 놓지 못해 쌍지팡이를 짚고 현장에서 공사진척을 살폈다. 골절된 발목은 가장 적합한 수술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후유증이 남아 지금도 좀 오래 걷기만 하면 발목이 부러지는듯 아프다고 한다. 2014년 화룡 ‘국제마라톤경기’가 시작되기 전, 총체적 계획에 근거해 원림처는 화룡시 북출구 부근의 4900평방메터의 공지에 잔디를 심어야 했다. 시공기간 마침 비가 와 중형 장비들이 현장으로 진입하기 어렵자 후경풍과 시공대는 비를 무릅쓰고 전송대를 리용해 잔디를 지정된 공지에 옮겼다. 그 기간 매일 인공으로 1000평방메터의 잔디를 심어야 했는데 그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도록 일군들과 로고를 같이 하면서 예정일보다 이틀 앞당겨 임무를 완수했다. 경기 당일, 마라톤경기에 참석한 국내외 선수들은 화룡시 도시록화 경관에 충분한 긍정과 호평을 주었다. “저희가 참 좋은 시대를 만났습니다. 분투만 하게 되면 꼭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까? 매번 제 손 으로 직접 설계한 원림 경관이랑 재배한 화초들이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면 전 모든 노력이 보람이 있다고 봅니다.” 후경풍은 원림록화 사업에 대해 신심가득히 말했다. 장애려 기자
정밀화 요구에 맞춰 일대일 지원 강화해 빈곤층부축의 협력을 새 단계로
정밀화 요구에 맞춰 일대일 지원 강화해
동서부 빈곤층부축의 협력을 새 단계로   16일부터 18일까지 녕파시 시장 구동요를 단장으로 한 녕파시대표단이 길림성당위 부비서장, 판공청 주임 곽수봉, 성정부 부비서장 오승풍 등의 동행하에 우리 주에서 동서부 빈곤층부축 협력과 새로운 단계에 교류협력을 강화할 데 관해 고찰했다. 17일부터 18일까지 구동요 일행은 선후하여 훈춘통상구, 야거얼(훈춘)유한회사 및 왕청현 계관향식용균주머니공장, 배초구진 목단지촌(牡丹池村) 집중식 태양광 발전 빈곤층부축 대상, 안도현 송강진 송화촌 향촌체험관광 대상, 화룡시 투도진 연안촌 관광종합체 대상, 룡정시 비암산풍경구 현대농업시범기지 등 대상현장을 고찰하고 계관향 계관촌 빈곤호 공천동을 위문했다. 18일 오후, 녕파와 연변 두 지역의 일대일 방조부축과 협력사업좌담회 및 계약식이 연변호텔에서 열렸다. 주당위 부서기이며 주장인 김수호가 좌담회를 사회하고 주당위 부서기이며 정법위원회 서기인 강방이 계약식을 사회했으며 주정부 비서장 소경량과 녕파시정부 부비서장이며 판공청 주임인 왕인원이 각기 회의에 참가한 일행을 소개하고 부주장 풍도가 방조부축과 협력정황을 소개했다. 그리고 쌍방은 2018년 일대일 방조부축협력 기틀협의와 종업원 휴양사업 협력교류 기틀협의를 체결했다. 구동요는 좌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틀간의 고찰, 탐방을 통해 빈곤현의 실제정황과 현지 간부군중의 방조부축 협력에 대한 간절한 바람, 하루빨리 빈곤에서 벗어나 초요사회를 실현하려는 간절함을 절실히 느꼈다. 현재 연변은 정밀화 빈곤해탈 난관공략전에서 승리하는 임무가 여전히 막중하다. 일대일 방조부축협력 지역으로서 녕파는 전력을 다해 동서부 빈곤층부축 협력에서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금후 녕파시는 ‘가장 높은 위치’에서 일대일 방조부축을 추진하고 ‘가장 큰 진심’으로 빈곤에서 벗어나 치부하도록 도우며 ‘가장 실제적인 조치’로 정밀화 방조부축을 심화하고 ‘가장 강대한 합력’으로 방조부축의 성과를 제고하며 연변이 하루빨리 빈곤에서 벗어나 초요사회를 실현하도록 힘써 추동하고 일대일 방조부축협력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여 중앙과 성당위,성정부에 우수한 답안지를 제출할 것이다. 성당위 상무위원이며 주당위 서기인 강치영은 주당위와 주정부를 대표하여 구동요 일행의 방문에 환영을 표하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로운 동서부 빈곤층 부축 합력에서 녕파와 빈곤층부축 관계를 맺게 되였는데 이는 연변이 빈곤에서 해탈되고 쾌속 발전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빈곤층부축관계를 맺은 뒤로 녕파시 당위와 정부는 고위층에서 추동하고 계획하여 빈곤층부축 합력을 위해 튼튼한 토대를 닦았고 녕파의 각급, 각 부문은 실속있게 일하고 진심을 보여주면서 연변의 빈곤해탈 난관공략을 위해 사심없는 원조를 보내주었다. 녕파는 전방위적으로 협력하고 전체 요소로서 지지해주어 연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강대한 에너지를 제공해주었고 녕파의 파견간부들은 말을 아끼고 진심으로 열심히 일함으로써 연변의 간부대오에 신선한 력량을 주입해주었다. 희망컨데 금후 연변과 녕파가 더욱 넓은 범위와 더욱 높은 차원에서 합작을 강화하여 서로 오가고 융합하며 윈윈하는 새로운 국면을 부단히 개척하길 바란다. 우리는 빈곤해탈 난관공략의 주체 책임을 착실히 리행하고 주동적으로 녕파의 각 부문과의 련결을 강화하며 녕파의 각항 부축 조치가 실제적인 효과를 보게끔 하고 당중앙, 국무원과 성당위, 성정부의 기대 및 절강성, 녕파시의 깊은 우의를 저버지리 않고 새로운 기점에서 동서부 빈곤층 부축 합작의 새로운 본보기로 되기 위해 노력하며 녕파인민들과 함께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개척해 나갈것이다. 소옥민 기자  
1~2월 전 주 재정수입 순조로운 첫 출발
사진출처 인터넷
우리 주 1~2월 재정예산 수입이 순조로운 첫 출발을 알렸다고 13일 주재정국에서 밝혔다.

료해에 따르면 1~2월 공공예산 전일적 재정수입은 27억 1211만원에 달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5.7% 증가했고 그중 일반 공공예산수입은 8억 조선족 정모3만원에 달해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0% 하락했다. 일반 공공예산수입가운데 세수는 5억9811만원을 완수, 동기 대비 15.3% 증가했다.

구체적인 세수항목을 보면 부가가치세는 2억 1900만원 완수,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7.9% 증가했고 영업세는 87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128.9% 증가했다. 토지 부가가치세는 2676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27.2% 증가했고 기업소득세는 8426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30.2% 증가했으며 개인소득세는 3911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25.8%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우리 주 정부기금 예산수입은 1억 3036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6.8%포인트 증가했는 데 그중 국유토지 사용권 양도수입은 1억 1625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더불어 우리 주 지방 공공예산 전일적 재정수입은 3705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95.3% 하락했고 일반 공공예산수입은 3224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76.3% 하락했다. 또한 지방 정부기금 예산수입은 375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514.8% 증가했다.

전 성 공공예산 전일적재정수입과 일반 공공예산수입 완수 정황을 보면 우리 주의 증가폭은 전 성에서 각각 3위와 6위를 차지했다.

우리 주 재정지출을 보면 1~2월 공공재정 예산지출은 46억 4707만원에 달했는바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6.5% 증가했고 그중 전 주 민생지출은 39억 6895만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25.2% 증가했고 GDP 완성과 관련된 8개 항목 지출은 37억 7908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35.7% 증가했고 전 주 정부기금 예산지출은 1억 4475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11.5% 증가했고 그중 도시농촌 사회구역사무지출은 1억 3263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7.4% 증가했다.

한편, 주본급 공공재정예산지출은 6억 7781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고 주본급 정부기금예산지출은 875만원 완수, 전년 동기 대비 453.8% 증가했다.

정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