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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전설, 항일 장령 무정 장군의 인생비화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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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라가평의 조선의용군 녀전사들. (자료사진)

란영이는 성격이 활달하고 활약적인 조선녀성으로 알려진다. 연극에서도 장끼를 보이였다. 태항조선혁명청년학교에서 매번 신입생을 환영하거나 여러 기념일에 문예공연을 가질 때면 란영은 의례 배우로 활약하였다. 류동호의 회고문을 보면 김창만 편극으로 된 대형연극 <조국의 딸> 녀주역과 호가장전투를 반영한 극 <태항산우에서>의 녀병사역도 란영이 맡아나섰다고 한다. 그 시절 태항학교에서는 자주 오락회나 야회를 가지였다. 그럴 때면 란영은 어김없이 나서서 30년대 눈물의 노래-<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그중 1절은 아래와 같다.


사공의 배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에 새악시 아롱진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전라남도 항구도시 목포는 일제에 의해 수탈된 호남의 기름진 쌀이 일본으로 실려가는 눈물의 항구였고 생계를 도모하고저 가족들과 헤여져야 하는 생리별의 부두였다. 이같은 일제수난기 우리 겨레의 력사와 시대상을 그대로 담은 목포의 눈물이기에 매번 란영이 이 노래를 부를 때면 강렬한 공명을 일으키군 하였다. 때론 무정도 참가하여 란영의 노래를 들으며 눈굽을 찍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1944년 음력설 직전 조선혁명군정학교로 개칭된 군정학교에서 일년사업총화를 가질 때 무정은 란영-김영숙이를 조선독립동맹 조직부 조직과 과장으로 임명한다고 선포하였다. 란영-김영숙은 그럴만한 혁명경력과 자격을 가진 조선녀성이였다. 마침 그해 1944년 3월, 일본군에서 탈출한 정철준(고철) 등 몇몇 열혈 조선청년들이 태항산근거지 하남점에 이르게 되였다. 그런 정철준은 김영숙이를 이렇게 그려내고있다.

(하남점의) 큰 거리를 벗어나 운동장같은 광장, 기실은 그 동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흰샤쯔에 진한 남색 양복바지를 입고 등뒤로 十자형으로 내리 건 멜방에 쌍태머리를 짤막하고 가쯘하게 짜르고 량쪽 팔소매를 걷어올린 나이 한 30이 될상싶은 얼굴이 하야말쑥한 녀성청년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보이는 회고자료들에서 유일하게 김영숙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자료라 하겠다. 여기에서 김영숙의 외모와 입은 옷들, 대략의 나이가 나타나 주의를 끄당긴다. 1944년에 나이 30살 쯤이면 1914~1915년 생 정도로 헤아려볼수가 있다. 그러면 1905년 생인 무정보다 약 10살 정도 어린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김영숙은 30살 정도가 아니라 20대 중반의 조선녀성이였다.

정철준 일행이 하남점에 이르자 선참 맞아주는 이가 김영숙이다.

“동무들이구만요. 수고했습니다.”

김영숙은 조선녀성답게 인사를 하며 그들의 손을 굳게굳게 잡아주었다. 그때 정철준 일행은 이 조선녀성이 조선독립동맹 조직과장임을 몰랐지만 팔로군내 조선동지들 대오에 “녀성동무도 있구나”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김영숙이 그들 일행을 골목길 지나 큰 거리 앞에 자리한 조선독립동맹 태항분맹 사무실로 안내하니 10여명의 조선동지들이 우르르 모이며 악수를 하며 열성적으로 맞아 주었다.

2~3일후 조선독립동맹 태항분맹구락부에서 정철준일행을 환영하는 대회가 열리였다. 정철준의 회고에 따르면 회장 정면에는 태극기가 정중히 걸려있고 ‘새동지입맹환영대회’라는 프랑카드, 량쪽으로는 ‘첩첩한 봉쇄선을 돌파하고 우리를 찾아오신 세 동무를 열렬히 환영한다’와 ‘일제의 강제학도병을 반대하여 일제병영에서 탈출한 세 동무를 환영한다’라는 구호가 내리걸리였다.

환영대회는 조직과장 김영숙의 사회하에 열리면서 구락부 주임의 지휘로 부르는 혁명가와 의용군행진곡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였다. 노래에 이어 김영숙이 정철준 등의 경력을 소개하고 입맹지원서를 랑독하였다. 김영숙을 따라 태극기 앞에서 두주먹을 부르쥐고 입맹선서를 하는 그들은 마음이 세차게 설레이였다. 정철준 등의 조선독립동맹 입맹, 조선의용군 참가가 통과되였으니 때는 1944년 3월 25일의 일이다.

환영대회는 무정의 총화보고로 이어졌다. 정철준은 무정사령원의 모습도 그리여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중키에 몸도 알맞춤하게 퉁퉁하고 상고머리를 가뜬하게 깎아올린 분이 군중의 박수소리속에서 연단에 올라섰다. 그는 책상우의 남포불을 가까이 놓고 돋보기를 꺼내들더니 수첩을 꺼내놓고 총화보고를 시작하였다. 어느 사이에 정리하였는지 우리 셋이 폭로해놓은 원시자료를 일제의 본질에 결부시켜 리론상으로부터 하나하나 총화해나아갔다. 음성은 낮으나 우렁우렁한 그의 목소리는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우리의 심장으로 파고들었다.

더우기, 중공당사의 례를 들어 설명하는 3대각오-진정한 혁명자가 되려면 얼어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적의 총알에 맞아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그리도 인상적일수 없었다.

이튿날인 1944년 3월 26일, 조선독립동맹 태항분맹구락부에서 새동지 환영만회가 열리였다. 석유램프가 무대를 환히 밝히는가운데 만회가 시작되였다. 처음 절목은 <엉터리음악대>인데 조선독립동맹의 조직부와 선전부의 조직과장 김영숙을 비롯한 선전과장 양계, 재료과장 박무, 적군과장 고봉기 등이 주요배우들이다. 그들은 독립동맹의 골간간부들이자 선전고동자이고 배우이기도 하였다.

악기류 또한 희한도 하다. 기본악기가 하모니카와 퉁소라면 동네서 빌어온 중국식 대고와 제금, 죽판(竹板)에 두드리거나 흔들면 소리나는 별의별 물건이 다 나온다. 그에 걸맞게 혁명가로부터 시작하여 합창, 독주, 독창, 연극 구전하다. 양계의 <동지>라는 시랑송도 등장한다.

환영만회의 마지막 종목은 김창만 작인 단막극 <북경의 밤>으로 펼쳐진다. 독립동맹의 지하사업일군이 일본헌병대 고문실에서 적들과 최후의 투쟁을 벌리는 내용을 주선으로 엮어졌다.

그후 어느날 독립동맹 선전부장 김창만이 정철준을 찾더니 오는 단오절에 화북조선인민대표와 일본군내의 조선학도병대표들이 모여 일본반파쑈대회를 소집하니 극본을 하나 써보지 않겠느냐고 물어왔다. 이렇게 극본 하나 써보지 못한 정철준은 강제학도병으로 가정이 파탄되고 미혼처와 생리별하게 되는 내용을 주제로 극본쓰기에 나선다. 이같이 정철준은 김창만의 지지와 받들림으로 꼬박 사흘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며 2막으로 된 극본을 써내게 되였다. 그 다음은 꿈나라, 얼마를 잤는지 권혁(权赫)이란 친구가 깨우는 통에 일어나보니 조직과장 김영숙이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닭알을 수북이 담은 바가지와 서너근 되는 백설탕을 가지고 왔었다.

“닭알과 백설탕은 무정 동지가 보내신거야요. 닭알은 산 것이고 사탕가루는 조직에서 무정 동지에게 공급한 것인데 동무들이 수고한다고 보내주신것이죠.”

정철준은 황송하기가 그지없었다. 사탕가루는 조직에서 조선의용군 총사령인 무정 동지에게 공급한 것이라고하니 더구나 그러하다. 아무리 사양하여도 안되였다. 정철준은 조선의용군내 동지와 동지간의 마음, 사령원과 전사들사이에 서로 이어진 동지우애의 정신을 한껏 느끼였다. 온몸에는 끝없는 행복과 무궁무진한 용기과 힘이 샘솟았다.

어느덧 1944년 봄도 가고 여름도 가고 서늘한 9월이 다닥쳤다. 태항 군정학교의 학원수는 날로 늘어나 하남점에 있는 분맹의 집만으로는 다락방을 치우고 상하 이층생활을 해도 태반 부족이다. 군정학교는 새동지들을 맞을 경리부만 남기고 서남쪽 언덕 약 3리되는 남장마을 전에 쓰던 절당으로 이사하였다. 군정학교는 새간판을 내걸었다. 교장은 의연히 무정이고 교도주임은 김창만, 조직사업은 김영숙이였다. 정치교원은 양계, 박무가 맡고 군사교원은 서휘, 리익성, 한경(韩晶) 등이 맡았다. 기동에서 약 80명의 새동지들이 와서 합치니 대오는 착실히 200명을 웃돌았다.

이들 200여명 속에는 금방 태항산으로 온 안화응(安华应)이라는 젊은이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 안병진(安秉珍)은 조선과 중국, 쏘련 등지를 동분서주하면서 조선공산당의 창건과 재건을 위해 싸우는 이름난 조선혁명가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다가 1927년에 조선 신의주에서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여 10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1942년에는 점원으로 일하는 목재상점을 따라 천진으로 오면서 조선독립동맹 지하혁명가로 활동하게 되였다. 따라서 아버지를 거의 모른채 고향땅 둘째 아버지네 집에서 자라면서 겨우 중학공부를 마친 안화응이 1944년 봄에 아버지를 찾아 천진으로 오게 되고 1945년 봄에 혁명대오를 찾아 태항산에 이르게 되였다.

안화응이 태항군정학교로 온후 조직과장 김영숙이 그를 찾아 개별담화를 하였다. 개별담화에서 김영숙은 조선독립동맹을 대표하여 안화응의 아버지를 높이 평가(안화응. 향도자. 중국의 광활한 대지우에서. 연변인민출판사 출판, 1987년 8월 출판, 제447페지)하여 주었다.

“안병진선생은 일찍부터 조선독립과 조선공산당건설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헌신적으로 싸웠지요. 지금도 험악한 적구에서 우리와 련계를 갖고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을 위하여 많은 유익한 일들을 하고 계시지요.” 김영숙은 조용히 담화를 이어갔다.

“원래 동무의 아버지는 일찍부터 동무를 무정 동지가 지도하는 우리 태항산근거지로 보내려고 했지만 그 자신의 신분은폐에 불리할가봐 지금까지 미루어 왔지요. 이번에 현파(玄波)동지가 나선데서 동무는 무사히 태항산으로 오게 되였어요.”

김영숙은 안화응이 태항산으로 오게된 자초지종을 자상히 설명하여주면서 아버지처럼 훌륭한 혁명가로 되기를 바랐다. 동맹의 조직과장인 김영숙은 새로운 동지들이 올때마다 관련 분맹과 조직선을 통해 그들의 신분과 경력을 헤아리면서 조직의 순결성을 담보하여 나섰다. 이는 김영숙의 드팀없는 선차적인 과업이였다.

1945년 7월 1일에는 무정과 함께 조선독립동맹과 연안조선혁명군정학교이 연안 라가평에서 소집한 중국공산당창건 24돐기념대회에 참가(연안 “해방일보”. 1945년 7월 11일자)한 모습을 보이였다.

그뒤 태항산근거지의 8월 15일 저녁이다. 신입전사이고 학원인 정철준이 일찍 저녁식사를 마치고 벽보편집내용을 머리로 굴리면서 운동장을 서성이는데 김영숙이 헐레벌떡 교문안으로 달아가고있었다. 정철준을 보고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였다. 방금 식사를 끝낸 동지들이 우르르 조선족 정모 김영숙이 종이장을 흔들면서 흥분을 터뜨렸다.

“지금 신화사에서 전문이 왔는데 일제가 동맹국에 무조건 투항했대요.”

“와-” 탄성과 함께 만세소리가 터져올랐다. 서로들 부둥켜안고 껑충껑충 뛰며 돌아갔다.

“그게 정말이예요?”

“그럼 정말이 아니고. 동무만 혼자 태항산에 남겠어요?”

정철준의 어린애같은 물음에 김영숙은 깔깔 웃어댔다. 김영숙은 조선녀성다운 풍모에 활발한 성격을 가지여 동지들가운데서의 인기도가 언제나 만점이였다. 그녀가 나타나는 곳에는 웃음소리가 터지고 분위기가 자못 활기를 띠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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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의 통신원으로 활동했던 왕안순과 그의 안해. (2009년 8월 현지촬영)

제 16부 광복 전후

조선만주공작위원회

무정은 조선(한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평생을 바쳐가는 사람으로서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중국혁명에 투신하면서도 항상 조선의 해방을 념두에 두고있었다. 그는 일제의 패망과 광복의 래일이 멀지 않았다, 가까워오는 조선혁명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조선독립동맹 여러 분맹의 활동과 더불어 조선국내와 중국 동북쪽에도 폭넓게 살손을 대였다. 그 실제행동이 1944년 9월에 3명의 동지를 책임자로 하는 ‘조선과 만주공작위원회’(鲜洲工作委员会)를조직한것이다. 따라서 조선국내에 2명의 지하공작자를 파견하였다. 그들의 과업은 국내에 분맹조직을 내오면서 적들의 조선에서의 징병을 반대하는한편 독립의 힘을 키워가는것이였다.

무정이 기초한 1944년 1월부터 1945년 5월까지 화북조선독립동맹 사업경과보고에 따르면 일제놈들의 통치와 략탈, 감시가 따르는 조선(한국)의 현실에서 도시로부터 농촌으로 발전하기로 하고 조직형식면에서 일률적인 독립동맹 분맹과 소조형식을 취하지 않고 여러 합법적인 조직과 어용조직을 리용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에 따라서 지하공작의 중점을 조선(한국) 북쪽과 서쪽에 두고 활동의 중심을 서울을 중심으로 하였다. 먼저 서울-회령쪽 선과 경원선(京元线), 함경선(咸镜线), 길회선(吉会线) 등 철도와 부근 도시들에 활동거점을 잡았다. 다음 서남방향의 농촌으로 발전하였다. 서쪽면의 지하공작에서는 경의철도(京义铁路)와 부근의 도시들에 활동거점을 박았다.

무정은 국내에 지하공작자를 보내여 일찍 독립운동에 나선적이 있는 동지들을 찾는데도 큰힘을 들이였다. 먼저, 중국대혁명이 실패한후 자기와 같이 일찍 중공상해조선인지부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여 조선국내 감옥에 투옥되고 석방된 로동지들을 찾게 하였다. 다음은, 무정이 중국으로 진출하기전 조선에서 같이 독립운동을 하였지만 지금까지 변절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그 다음은, 무정의 옛 동창들이였다.

무정의 사업경과보고에는 1944년 6월에 상해조선인지부에서 서기로 활동했던 동지를 찾았다는 구절이 나온다. 무정의 사업경과보고에 따르면 이 동지는 1930년에 상해에서 적들에게 체포된 후 일제령사관을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되여 7년형을 받았고, 석방된 후 서울부근의 한 시골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비밀활동을 벌리고있었다. 여러 면의 자료고증을 통하여 무정이 말하는 이 동지가 려운형이라는것이 밝혀졌다. 려운형 관련자료에 따르면 사실 상해에서의 려운형의 체포는 1930년이 아니라 1929년 7월이며 혐의는 독립운동지원으로서 상해 주재 일본령사관 경찰부에 체포되였었다. 복역도 7년이 아니라 4년이였다.

려운형(吕运亨,1886.5-947.7)은 경기도 양평군 출신으로서 1900년배재학당(培材学堂)에서 기독교를 접하며 활동하다가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하게 되였다. 그는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1914년 겨울 결연히 중국으로 와서 장로교 선교회가 운영하는 남경금릉대학(南京-陵大学)에서 3년간(28-30세) 영문학과 철학을 배웠다. 1916년에는 상해로 가서 협화서국서점에 취업하면서 선교사, 인성학교 교사, 려행대행업 등을 했다.

1918년 상해에서 장덕수(张德秀)를 만나면서 정치와 독립운동에 관심을가지기 시작했으며 신한청년당(新韩靑年党)을 발기하였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림시정부가 조직되자 림시의정원(临时议政院)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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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도 티가 있듯이 사람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세부를 중시하고 책임감 높여야
13일, 부주장 주금성은 연길시에서 명절기간 안전생산 사업에 대해 검사했다. 국가전력망 연변배전유한회사에서 주금성은 명절기간 전력공급 보장사업 배치와 안전생산 상황을 상세히 료해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음력설기간의 전력 공급은 천가만호에 관계되는 사업으로서 책임이 중대하기에 기업에서는 지도일군 당직 지도 제도를 착실히 시달하고 완벽한 전력공급 보장방안을 제정하며 각종 위험 방지 및 사고 응급 훈련을 강화하고 대처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또한 설비 우환 조사와 전력시설 보호 활동을 전면 전개해 전력망의 안전운행을 효과적으로 보장하여 명절기간 전기 사용호들에게 안전하고 믿음직한 전기 사용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이어 연길시신풍주유소에서 주금성은 주유소가 안전생산의 중점 지역이라며 작업일군들이 규범적으로 조작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며 사소한 부분을 중시하고 안전 의식, 책임의식을 강화하며 소방 훈련을 증가하여 화재를 효과적으로 예방, 통제함으로써 안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요구했다. 연길시천성쇼핑광장에서 주금성은 설명절기간 상가를 찾는 손님들이 증가하는 데 대비해 기업에서는 각항 안전 보장 조치를 엄격히 시달하고 설비 보수와 시설 관리, 소방 순시 검사를 강화하여 안전한 구매 환경을 보장하는 한편 식품안전을 엄격히 틀어쥐고 명절기간 각종 물자의 공급을 보장할 것을 제기했다. 연길시일잡유한회사 폭죽판매점을 찾은 주금성은 폭죽의 분급 관리, 판매점 분포, 저장의 안전성 등 규정에 대해 깊이있게 료해하고 나서 관련 부문에서는 감독관리를 강화하여 화재, 폭발 등 폭죽으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설명절을 보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사우 기자
공익사업 사회기풍 선도해야
2월 6일과 9일, 주당위 상무위원이며 주정신문명건설위원회 주임이며 주당위 선전부 부장인 김기덕은 화룡시와 왕청현에서 리문철, 김춘섭, 최광일 등 우리 주에 뚜렷한 공헌을 한 선진전형을 위문했다. 6일, 김기덕은 화룡시희망복리원을 찾아 ‘전국 도덕모범 추천상’ 획득자이며 복리원 원장인 리문철을 친절히 위문하고 그와 복리원 아이들에게 명절의 인사를 전했다. 김기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드팀없이 훌륭한 사람으로 되고 한평생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리문철 원장은 45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훌륭한 사람’이란 구경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 해석했다. 희망컨대 지난날과 다름없이 공익사업을 잘하고 초심을 잊지 말며 계속 전진하고 사회기풍을 선도하며 더욱 많은 아이들이 따뜻함을 느끼게 하길 바란다. 9일, 김기덕은 왕청현 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에 찾아가‘전국 시대의 본보기’ 김춘섭을 위문했다. 김기덕은 우리 주 정신문명 건설 사업에 한 김춘섭의 적극적인 기여를 충분히 긍정하고 그에게 ‘새시대전습소’와 애국주의교양기지를 활용할 것을 건의했으며 19차 당대회 정신에 결부시켜 연변의 홍색이야기를 강연자료에 편입시키고 우리 주 애국주의교양과 리상신념교양을 부단히 강화하며 영웅사적과 력사유적지를 발굴하여 홍색유전자가 우리 주에서 전승되게 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전국 도덕모범 추천상’을 받은 최광일의 집에서 김기덕은 그의 건강, 사업 정황을 상세히 료해했다. 최광일은 격동된 어조로 지난해 인민대회당에서 19차 당대회에 참가했던 정경을 묘사했다. 김기덕은 최광일이 평범한 일터에서 사회에 큰 공헌을 했고 전 주에서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이며 연변인민의 자랑이기도 하다면서 그에게 건강에 류의해 사회에 더욱 큰 가치를 창조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고안기 기자
대지의 아들 황대년
더 많은 시간을 안해와 보내기 위해 그는 늘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공항, 역으로 달려갔다. 황대년이 돌아오면 장염은 대년만을 지키면서 바깥세상과 접촉하지 않았다. 이런 시한부인생은 시시각각 그리움보다 훨씬 의리 있고 정 깊어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우평은 황선생님의 유일한 한쌍의 정장구두와 한벌의 양복은 어느 한번 외국에서 열리는 회의 때 산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는 정장차림을 요구했다. 황선생님은 원래 관례 대로 현장을 관할하는 친구의 정장을 빌려 입으려 했으나 자기의 사이즈와 맞는 것이 없어 서둘러 한벌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공리화한 사회에서 황선생님은 몇억원의 대형 프로젝트를 취급하는 사람이였지만 소박하고 초연하게 생활했다. 이처럼 소박한 사람이였지만 학생들의 집에 곤난이 있으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지원하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는 모른다. 황대년은 별세했으나 그의 생명의 빙점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령혼에 불을 지폈다. 항상 깊은 밤중에 황대년을 마중하고 바래다주던 류국추는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지만 황선생님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가요? 나는 황선생님과 별로 대화가 없었지만 황선생님은 차에 타면 늘 잠이 들었으나 나는 그가 큰 인물이고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사업하였지만 돈이 있어도 돈을 쓸 운명은 아닌가 봅니다."라고 말했다. 류국추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찔렀다. 류국추는 "황선생님의 골회가 아직 장춘에 보관되여있으니 만약 어느 날 그의 골회를 고향에 가져가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가려 하지 않으면 내가 가겠습니다."고 말했다. 길림대학 예술학원의 요립화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한번 황선생님을 ‘강박’하여 오락활동에 참가시킨 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황선생님을 위해 이란 노래를 신청하였다. 황대년은 노래가 끝나자 아주 기뻐하며 주동적으로 란 노래를 또 신청해 불렀는데 이 노래는 그날 저녁 황선생님이 신청한 유일한 한곡이였으며 감정을 다해 부른 노래였다. 그때 요립화가 "황선생님, 란 노래를 꼭 배우세요. 선생님의 카리스마와 잘 어울리는 노래입니다."라고 말하자 황선생님은 오히려 쑥스러워하며 자기는 그래도 는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며 이 노래를 꼭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황대년이 별세한 뒤 오래동안 요립화는 는 노래를 감히 부르지 못했다. 그녀는 “황선생님이 이 노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었습니다.이 노래를 다시 부른다면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황선생님은 나에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 알도록 가르쳐주었습니다. 사실 한 마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기교는 다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이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또 한번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 황선생님은 우리들이 만약 한 마음을 써내지 못한다면 모든 기교가 의미 없을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마지막으로 한번 장춘을 떠나기 전 초건은 우리를 안내하여 장춘장의관으로 갔다. 황선생님의 골회함에는 당기가 덮어져있었다. 그의 사진 옆에는 학생들이 수정액자로 표구한 습근평 총서기의 황대년 선진사적에 대한 중요지시가 있었는데 그 우에는 ‘심유대아, 지성보국’이란 여덟 글자가 유난히 눈에 띄였다. 청명절, 단오절, 아버지의 날에 학생들은 모두 황선생님에게 선물을 갖고갔다. 그중 한그루의 수정사과나무에 오색찬연한 사과가 나무가지에 걸려있었는데 하나만 땅에 떨어져 뉴톤의 만유인력 연구를 상징하고 있는 듯했다. 황대년의 한평생 연구는 모두 이와 관련되였으며 아마도 다른 세상에서 이를 보고 벙긋 웃을 것이다. 우리는 꽃을 골회함상자 밑에 조용히 놓고 허리를 굽혀 세번 경례했다. 황대년과의 만남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의 령혼이 가령 개체의 협소에 구애를 받는다면 자아적인 작은 성과에 도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우리가 매일 이 세상의 고통과 피로를 원망하고 우리 내심의 천평이 늘 사리의 득실에 치우칠 때마다 나라와 인민 모두에게 아름다운 래일을 마련해주고 고품질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꿈을 위해 달갑게 위대한 희생을 하고 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뭉쳐 사업을 성취하고 신앙을 응집시켜 중국의 발전을 추동했다! 조국을 위해 벅차게 뛰여온 황대년의 생명은 역시 수많은 사람들과 우리들로 하여금 마찬가지로 벅차게 했다…네트즌들의 "보면서 울음을 터드렸다", "중국의 주축", "당대의 걸출한 인물" 등 조수와도 같은 평론을 보며 우리는 매체가 바로 시대의 한개 거울이며 매체가 무엇을 조명하면 시대는 곧 무엇과도 같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이른바 ‘대사 부재, 신양 결핍’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의연히 일종 주류의 가치로 그들의 심령을 밝히고 일종 따뜻한 정신으로 그들의 령혼을 침윤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습근평 총서기가 황대년의 선진사적에 대해 중요지시를 내린 뒤 전국 범위내에서 ‘황대년 동지를 따라배우자’는 활동을 발의했다. 황대년사적보고단은 각지에 심입하여 순회강연을 하고있다. "비록 황선생님은 이미 하나의 '전형'으로 되였지만 사실 그 어떤 의도적인 치켜세움도 필요 없습니다." 우평은 만일 황선생님이 살아계신다면 여전히 그를 과대 선전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며 그것은 "황선생님이 생전에 그처럼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이였기에 만일 사실 대로 환원하지 못한다면 마음속으로 고통스러워할 것이다."라고 늘 생각하였다. 아름다운 생명은 종래로 수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래부터 간결하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임파는 대년 선배가 줄곧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계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 생명은 길고 짧음과 깊이와 높이가 있다는 계시를 주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제한된 생명을 더욱 의의 있게 할 것인가? 대년 선배는 그가 걸어온 발자취로 우리에게 답안을 주었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하늘에는 날개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나 나는 이미 날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번 뿐인 생명이 이처럼 웅장할 수 있다면 일생은 역시 영원할 것이다. 이제부터 지질궁 5층의 그 익숙하던 창가에 더는 겨울밤의 불빛이 켜있지 않을 것이다. 우평은 "문화광장을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모두 머리를 들어 지질궁 5층의 그 창문을 쳐다보는 것이 습관이 되였으며 늘 황선생님 사무실의 전등은 언제나 늦은 밤까지 켜져있었으며 지어 더 늦게까지 켜져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나는 더는 그 불빛을 볼 수 없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등불을 밝히던 황선생님이 너무 힘들어 쉬려고 할 뿐더러 마음을 모질게 먹고 자신에게 기한이 없는 장기적인 휴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황대년에 대해 알지 못하던 데로부터 황대년을 리해하기까지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을 환기시켜 황대년을 우러러보고 따르게 하기까지 황대년은 생명으로 우리를 선도하여 우리가 잡고 있는 그 ‘필’로 그 열애와 충성을 진실하게 기록한다면 황대년이 생명으로 밝힌 그 불빛이 더 멀리 비춰지고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도록 하였다. (끝)
연변 출신 대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광범한 연변 출신 대학생 여러분:
편지를 읽는 당신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이 시각 당신은 아마 가족들과 따뜻하고도 평안한 설명절을 보낼 준비를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어쩌면 또 다른 스스로와 마주했을지도 모릅니다. 졸업, 근무, 비전, 앞날 이런 단어들이 마음속에 차올라 어쩌면 벅찰지도, 어쩌면 불안할지도, 어쩌면 기대감으로 충만돼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당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둔 당신과 우리는 잠간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당신은 십수년의 어렵고 힘든 공부 끝에 대학입시에 합격해 가족들의 간절한 당부와 부푼 기대, 희망을 품고 20년간 생활하던 고향을 떠나 상아탑에서 꿈을 찾는 려정에 올랐을 것입니다. ‘연변인’ 특유의 순박함, 열정, 근면함으로 당신은 열심히 공부하고 분발 향상해 사리에 그닥 밝지 못했던 소년에서 점차 의기양양한 청년으로 성장했을 것이며 외부에 부지런하고 진취적이며 겸허하고 례의 바르며 다재다능한 연변학생의 량호한 이미지를 충분히 보여줬을 것입니다. 고향은 당신의 성장과 진보에 시종일관 주목해왔고 당신의 성과에 위로와 긍지를 느낍니다! 발견했을지 모르지만 당신의 가장 익숙한 오랜 벗-사랑스러운 고향 연변 역시 당신과 똑같이 끊임없이 배우고 진보하며 번영해지고 있습니다. 선도구개발개방, 동북로공업기지 진흥, 서부대개발, 흥변부민 등 다양한 국가 우대정책의 중복 효과로 연변은 이미 정책의 고지, 창업의 비옥한 토양으로 거듭났습니다. 특히 습근평 총서기가 직접 연변을 찾아 시찰하고 사업을 지도해 고향인민의 사기와 자신감을 지대하게 진작시켰습니다. 현대의약, 민족식품, 관광, 목제품 가공, 에너지 광산, 장비 제조 등 주도 우세산업의 신속한 발전과 더불어 사회사업 역시 전면적으로 진보하고 있으며 도시와 농촌의 면모가 뚜렷하게 개선되고 민생복지도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습니다. 연변은 지금 질이 높고 효과가 좋으며 구조가 보다 최적화되고 우세를 충분히 방출할 수 있는 진흥, 발전의 길 우에서 안정적이고도 빠르게 달리고 있으며 그 미래가 한없이 찬란합니다. 고향을 향한 당신의 충심은 한순간도 변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나라에서 ‘천인 계획’, ‘만인 계획’ 등 중대한 인재프로젝트를 실시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연변에서도 시종일관 인재에 높은 중시를 돌리고 있으며 다양한 면의 우수한 인재, 특히 고차원 인재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연변은 국내 유명 대학 졸업생들의 귀향 취업, 창업을 적극 유치했습니다. 특히 2016년부터 인재유치 프로젝트인 ‘천인 계획’을 실시한 이래 이미 387명에 달하는 북경대학, 한국 서울대학 등 국내외 유명 대학 졸업생을 유치했고 2018년 인재유치 사업도 곧 시작하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귀향창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해 대규모 대학 졸업생들의 귀향창업을 이끌어냈으며 이들이 ‘개인의 꿈’을 ‘중국꿈’, 고향 발전과 밀접하게 련관시켜 연변 새시대 진흥 발전의 참여자, 직접 체험자, 견증인이 되게 했습니다. 여러분 역시 연변을 주목하고 연변을 홍보해 보다 많은 학생들이 연변에 돌아와 사업, 생활할 수 있게 다리를 이어주고 보다 많은 편리를 제공해주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열정은 꿈을 이뤄주고 열심히 일하는 자만이 미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연구생 꿈, 스타 꿈, 창업 꿈, 부자 꿈, 안거(安居) 꿈, 성가(成家) 꿈, 당신이 어디서 어떤 꿈을 선택하든 고향은 당신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항만이고 정신적 가원입니다. 이곳에는 당신이 인생 리상을 실현할 수 있는 넓은 무대가 있고 이곳에는 당신이 아름답고 눈부신 기적을 창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습니다. 고향 인민은 당신의이 귀향해 우리와 함꼐 아름답고 행복한 연변을 건설하고 조국 번영, 변강 발전의 새로운 장을 펼쳐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과 가족이 소원하는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주 우수대학졸업생 유치 자문 전화: 주 당위 조직부 인재 사업처:0433—2514282 연길시인재판공실:0433—2522958 훈춘시인재판공실:0433—7525283 도문시인재판공실:0433—3661723 돈화시인재판공실:0433—6223840 룡정시인재판공실:0433—3233779 화룡시인재판공실:0433—4222426 안도현인재판공실:0433—5822436 왕청현인재판공실:0433—8821055
주인재사업지도소조 2018년 2월 12일  
방문활동 가운데서 신임과 소통의 다리 놓아
2018년 ‘두 명절’기간, 주 빈곤해탈 난관공략 지도소조 성원단위에서는 전 주 빈곤해탈 난관공략 겨울철 방문 가운데서 각자 업종우세를 충분히 발휘하고 곤난군중들과 밀접히 관련된 ‘두가지 걱정이 없고 세가지를 보장’해주는 문제를 둘러싸고 ‘세가지 보기, 세가지 문의, 세가지 말하기’ 원칙을 시종 견지하고 빈곤호와 직접 교류, 소통하며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어 곤난군중들이 빈곤층부축 정책을 더 깊이 료해하고 전 주 빈곤층부축 개발 사업의 인정도와 만족도를 제고했다.
주민정국: 방문활동 펼쳐 온정 전달 촌민들에게 건강을 전달했다. 의료단체를 무어 도급촌 촌민들에게 의료일군을 배치해 약처방을 떼주고 촌민들의 의혹을 풀어주었으며 한명의 촌민에게 중병 구제자금을 제때에 신청해주었다. 촌민들의 생활요구에 관심을 돌리고 온정을 전했다. 국의 지도일군들은 련속 3차례 팀을 이끌고 도급촌을 방문해 곤난군중들이 요구를 료해했으며 빈곤호 및 빈곤위기에 처한 농호에 가치가 1.7만원에 달하는 쌀, 밀가루, 콩기름 등 생필품을 전달하고 중점빈곤호에 4000원에 달하는 명절위문금을 전달했다. 정신문화 요구에 관심을 돌리고 문화를 전했다. ‘작은 빨간 모자 로년예술단’과 손잡고 문화하향 혜민공연을 조직해 전체 촌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빈곤층부축 지식과 빈곤해탈 정신을 크게 선전했다. 촌민들의 생활사정을 헤아려 정책을 선전했다. 좌담 등 형식을 통해 빈곤호에 국가 빈곤층부축 정책을 강의해주고 촌에서 토닭사양과 인삼재배산업 대상을 계획하게 하여 더욱 많은 촌민들이 소득을 증가하고 치부하고 하루속히 빈곤에서 해탈되게 했다. 주당위 조직부: 기층에 심입해 당의 따사로움 전달 음력설 전야, 주당위 조직부 기관당사업위원회 조직부 기관의 과급 및 그이상 간부들은 류동촌에 내려가 촌의 55세대 빈곤호를 위문했다. 이와 동시에 주당위 조직부 기관당위에서는 재직당원들이 사회구역에 진입해 ‘두개 일터, 두개 책임’을 리행해야 한다는 관련 요구를 엄격히 리행했으며 조직부 기관 12명 중층간부는 사회구역 빈곤호를 위문해 농촌, 사회구역 빈곤호가 명절을 앞두고 당의 배려를 충분히 느끼게 했다. 2017년 주당위 조직부에서 도급을 맡은 화룡시 남평진 류동촌은 아름다운 변신을 가져왔다. 문화광장과 위험주택을 새로 건설하고 전반 도로를 새로 보수했으며 증수대상을 새로 늘이고 ‘다섯가지를 함께 하는 교육’을 새롭게 내와 촌집체경제를 부단히 발전시켜 빈곤호들의 년간 인당 순수입이 점점 많아지게 했다. 류동촌의 각항 민생사업의 발전이 다그쳐지고 생태환경이 날로 개선되였으며 인민군중들이 더욱 많은 획득감, 행복감과 안전감을 갖게 했다. 주문화텔레비죤신문출판국: 혁신적 방식으로 온정 전해 일대일 부축 위문을 했다. 안도현 명월진 오일촌과 만보진 영복촌을 도맡은 이 국 전체 부축 책임일군들은 90명 빈곤군중을 한명씩 책임지고 위문했으며 가치가 1.778만원에 달하는 콩기름, 밀가루 등 생필품을 전달했다.  손잡고 위문 공연을 펼쳤다. 연변가무단의 당원지원자들은 명절을 앞두고 공연팀을 무어 도급촌의 촌민들에게 위문공연을 펼쳤고 촌민들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빈곤해탈 난관공략 사업의 각항 정책을 선전했다. 정성껏 빈곤가정을 도왔다. 국 기관과 국 소속 사업단위에서는 도급촌의 빈곤호가 참여한 합작사 기름방에서 가치가 근 6만원에 달하는 애심 콩기름을 판매하고 구매해 빈곤호의 소득을 증가시켰다.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해동안 주문화텔레비죤신문출판국에서는 위문, 집중부축 활동을 도합 10여차 조직하고 13만여원에 달하는 금액을 기증했다. 주장애인련합회: 편지 거래로 따스한 정 전해 주장애인련합회의 31명의 당원 간부들은 당건설과 빈곤해탈 난관공략 사업을 결부하고 높은 정치적 책임감을 갖가지고 '‘친지나 친구의 집을 방문' ’하듯 스스럼없이 도급 가정을 찾아 위문품을 전달하고 '‘두가지 걱정이 없고 세가지를 보장'’해주는 원칙에 따라 주방을 둘러보고 아래목을 짚어보면서 실질적인 수요를 료해하고 정책을 선전했다. 지난해 도급촌의 83호 빈곤호가운데 57호가 빈곤에서 해탈됐다.  빈곤호 량명숙(68세) 로인은 위문을 받는 과정에서 당과 정부의 빈곤해탈 난관공략에 대한 좋은 정책과 도급 단위의 관심과 방조에 감사를 표하면서 촌의 전체 빈곤호를 대표하여 주장애인련합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할 편지를 썼다. 주장애인련합회에서는 겨울철 방문 활동중 산업대상 집중, 식수안전 등 난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다하고 올해 빈곤해탈 난관공략 사업 계획을 연구, 확정했다. 설명절에 즈음해 주장애인련합회는 도급촌에 촌민들에 대한 걱정과 빈곤해탈 난관을 공략할 결의를 담은 명절위문편지를 전했다. 주농업위원회: 각 방면의 력량 동원해 빈곤층을 부축 '‘두가지 명절' ’기간 주농업위원회에서는 집중 방문과 단독 방문, 정기적인 방문과 비정기적인 방문을 상호 결부하여 빈곤호의 실제 수요를 료해한 후 실질적인 곤난을 해결해주었다. 이번 겨울철 방문은 주농업위원회에서 참가 인원이 가장 많은 한차례 방문으로 매 호의 빈곤층 가정을 한명의 책임자가 방문하여 '‘세번 보고 세번 물으며 세번 말하는'’ 원칙으로 도급 빈곤호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교류의 장을 열었다. 이번 겨울철 방문은 또한 주농업위원회에서 위문 물자를 가장 많이 전한 한차례 방문으로 사회 각계의 참여를 요청하여 107명의 빈곤호에게 겨울 솜옷을 전달했다. 동시에 촌주재 인원들은 적극적으로 빈곤층 가정의 적체된 농산품을 판매하는 것을 도와 수입을 증가시켰다. 주위생계획위원회: ‘빈곤' 모자'’ 벗게 제거하고 민심 위로 지난해 말, 주위생계획위원회의 도급촌의 19호, 29명 빈곤호가 순조롭게 ‘빈곤' 모자'’를 벗었다. 사업일군들은 겨울철 방문 과정에서 빈곤층부축 성과를 발견하고 빈곤 군중들이 전한 깊은 감사의 뜻을 받았다. 설명절에 즈음해 주위생계획위원회에서는 여러 위문 소조를 묶어 도급촌인 안도현 명월진 대립자촌을 찾아 19호의 빈곤호와 >>34호의 일반 가정을 위문했다. 도급 전후의 대립자촌의 변화를 돌이켜보면 촌위생실이 새로 세워지고 촌의사가 배치되였으며 촌민들은 주내 각 병원의 전문가들의 무보수진찰을 정기적으로 받게 됐다... 대립자촌 촌민들은 도급 단위인 주위생계획위원회에 대해 남다른 감사의 정을 가지고있다. 주위생계획위원회에서는 향후 빈곤층 부축 조치를 강화하고 정밀 부축 능력을 부단히 증가하여 빈곤층 부축 성과를 공고히 하는 한편 각 항 빈곤해탈 난관공략 임무를 완성하여 초요사회를 전면 건설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다양한 플랫폼으로 회원기업에 봉사 제공
9일, 2018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년회가 연길에서 있었다. 이번 행사에는 주인대 상무위원회 원 부주임 김정해를 비롯한 정부기관 해당 인사, 기업계, 각 사회조직 대표와 매체 기자가 참가했다. 대회에서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 집행회장인 전규상이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단과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를 대표해 축사를 올렸다. 전규상은 지난해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가 ‘인맥, 정보, 정책, 자원 공유’를 취지로 삼고 회원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봉사 플랫폼을 확장하여 풍성한 성과를 거두었다면서 새로운 한해 여러 기업가들이 동심협력하고 예의진취하여 정부, 사회, 회원을 위해 더 많이 봉사하고 더욱 큰 성과를 거둘 것을 희망했다. 지난해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는 제8회 중국조선족경제교류대회, 제1회 전국조선족청년기업가포럼 및 제1회 전국조선족녀성기업가포럼, 길림성 조선족 전통음식업 발전 경험교류회 등 대형 행사를 주관하고 한국, 로씨야 고려인련합회와 상호 방문 교류했으며 자매협회간의 합작을 도모하고 자체 조직 건설에 힘을 기울였다. 대회에서는 2017년도 선진집단과 선진개인을 표창한 데 이어 기업가포럼 회원기업들의 제품 전시 행사가 있었다. 현진국 기자
연변, 올해 투자규모 1억원 이상 대상 297건 실시
10일, 주정부에 따르면 올해 우리 주에서는 1억원 이상 대상 297건을 실시할 계획인데 그중 10억원 이상 대상 38개가 포함된다. 상기 목표 실현을 위해 우리 주에서는 우선 ‘쌍백회전’과 봄철 ‘세가지 일찍’ 행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해 대상 실시 단위를 독촉하고 방조해 전기사업을 완벽화하는 동시에 대상마다 책임단위, 책임자와 시간표를 명확히 하여 상반기 신축대상 시공률을 80% 이상, 후속건설대상 회복 시공률을 90% 이상에 달하도록 확보한다. 연길공항 이전 신축 예비 가능성 연구 보고 비준 신청 사업을 마무리 짓는 동시에 가능성 연구 편성 및 환경영향평가, 에너지기술평가 등 전기사업을 가동하고 올해 안으로 신공항 부대기초시설이 시공건설되게 하며 룡정-따푸차이허 고속도로, 돈화-이도백하 고속철도 등 중점대상이 관련 진척 요구에 따라 다그쳐 추진되게 한다. 연길 신에너지자동차, 훈춘 약연탄 종합리용, 도문 화공산업단지, 돈화 의약산업단지, 안도 광천수산업단지, 왕청 태양광 빈곤층부축 대상, 룡정 동성용진 특색마을 등 중대대상 건설을 뚜렷이 틀어쥔다. 한편 올해 우리 주에서는 투자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산업구조조정, 봉사업 발전을 둘러싸고 과학기술 함량이 높고 납세능력이 강하며 생태효익이 좋고 민생개선에 유리한 큰 대상, 좋은 대상을 계획하고 포장한다. 올해 우리 주에서는 1억원 이상 대상 200건을 기획해 전화률을 30% 이상에 도달되게 할 계획이다. 당면 대상건설 가운데서 집중적으로 반영된 토지징수철거, 수속미비 등 문제와 관련해 우리 주에서는 지도자도급, ‘쌍백회전’, ‘백일 난관공략’ 등 조치를 취해 해결할 계획이고 국가의 정책 방향과 자금투입 방향을 밀접히 주시하며 국가 정책, 자금 지지를 적극 이끌어내게 된다. 이 밖에 우리 주에서는 투자유치, 대상유치, 인재교류 등 사업을 둘러싸고 녕파시와의 소통과 접촉을 강화하며 한패의 큰 대상, 좋은 대상을 유치할 계획이다.  현진국 기자
여러 민족 모두가 설을 즐겁게 쇠도록

음력설을 즈음해 12일 성당위 상무위원이며 주당위 서기인 강치영은 연길시와 주공안국에서 공안소방 사업에 대해 조사연구하고 주당위, 주정부와 전 주 여러 민족 인민을 대표하여 최전방에서 근면하게 사업하는 전 주 공안경찰들에게 위문과 감사를 표했으며 전체 공안의 가족들에게 명절의 문안과 축복을 전했다. 강치영은 선후하여 연길시공안국 공원파출소를 찾아 기층 경찰들과 친절히 교류하고 그들의 사업, 생활 상황을 자세히 물었으며 연길시공안소방대대를 찾아 소방차량 장비 및 응급구조 구조기재를 둘러보고 소방대대의 사업소개를 청취했으며 연길시 하남 근무처를 찾아 교통경찰대대 녀자 시범 근무처 근무인원들을 방문하고 연길시 교통의 기본정황을 료해했으며 주공안국에서 특수경찰 장비 실태를 살폈다. 방문하는 동안 강치영은 참답게 듣고 자세히 물으며 그들이 계속하여 사업을 참답게 하여 더욱 큰 성과를 이루라고 격려했다. 주공안국에서 강치영은 좌담회를 소집했다. 주당위 부서기, 연룡도당위 서기이며 주정법위원회 서기인 강방이 회의를 사회하고 부주장이며 공안국 국장인 류동백이 전 주 공안사업 정황에 대해 회보했다. 회보를 청취하고 나서 강치영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매년 가족들끼리 모여 화기애애하게 명절을 보낼 때가 공안경찰들이 제일 수고하고 제일 바삐 보내는 시기이다. 동지들은 여러 사람들을 위해 일터를 지키고 직능을 리행하며 사심 없이 공헌하고 전 주의 안정을 수호하며 군중들의 행복을 지키고 한 사람의 수고를 많은 사람들의 즐거움으로 바꾸며 바른 기풍으로 많은 사람들의 평안을 수호하고 공헌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찬양을 받았다. 강치영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근년에 전 주 공안분야는 경제, 사회 발전 대국을 단단히 둘러싸고 전면적으로 사회치안 예방통제를 강화하며 위법범죄 행위를 엄격하게 타격하고 제반 안보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함으로써 전 주 대국의 안정을 유지하고 사회의 공평, 정의를 촉진했으며 인민의 안거락업을 보장하는 데 뛰여난 공헌을 했다. 특히 지난 한해 동안 전 주 공안분야는 정치안전, 변경안전, 사회안전, 공공안전 및 인민군중의 생명재산안전을 견강하고 유력하게 보장하였고 여러 면의 사업에서 현저한 성과를 이뤘다. 실천이 충분히 증명하다싶이 전 주 공안대오는 내놓을 수 있고 담당할 수 있으며 승리할 수 있는 ‘강군’이고 우리는 선전하고 용감히 투쟁하는 이런 공안대오가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강치영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한개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고 한개 지역의 평안을 확보하며 한개 지역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은 공안분야의 신성한 직책이다. 전 주 공안전선은 국가의 총체적 안전관을 전면적으로 관철하고 국가안전과 변강의 안정을 견결히 확보하며 악세력을 제거하는 전문적 투쟁을 힘써 추진하고 법에 의거하여 엄중하고 엄격하며 빠르게 악세력을 타격해야 한다. 수준급의 안녕한 연변을 가속도로 건설하여 인민군중의 안전감과 만족도를 부단히 증가하고 엄격히 당을 관리하고 엄격히 경찰을 다스리는 제반 요구를 전면적으로 시달하여 당과 인민이 만족하는 훌륭한 공안대오를 힘써 육성해야 한다. 주당위, 주정부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기치가 선명하게 공안사업을 지지하고 공안간부를 관심하고 보살피며 여러분들의 튼실한 지지자로, 유력한 보장으로 될 것이다. 음력설이 곧 다가오고 조화롭고 안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는 임무는 더욱 가중되였다. 공안간부와 경찰은 더욱 분발하고 계속하여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련속 작전하는 우량한 작풍을 발양하며 제반 사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교통, 소방 등 공공안전을 절실히 보장함으로써 전 주 여러 민족 군중이 평안하고 유쾌하며 즐거운 음력설을 보낼 수 있도록 확보해야 한다. 주당위 상무위원이며 연길시당위 서기인 강호권, 주당위 비서장 최광덕, 주 직속 관련 부문과 연길시 주요책임자가 상술한 활동에 참가했다. 고운 기자      
공회부문 빈곤종업원 부축…26년간 33만가구 위문
기자가 주총공회에서 알아본 데 따르면 전 주 공회부문에서는 설명절을 맞으며 2018년 ‘두 명절’ 온정 베풀기 활동을 적극 펼쳐 당과 정부의 따스한 관심을 전 주의 종업원 군중들에게 전달했다. 주총공회는 이번 온정 베풀기 활동을 19차 당대회 정신의 학습, 선전, 관철과 결부시키고 위문활동을 충분히 리용하여 당대회 정신의 선전, 해독 사업을 전개했으며 명절의 즐거움을 기층에 전달하고 종업원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등 주제활동을 통해 광범한 종업원 군중들이 당과 정부의 온정을 느끼게 하고 당의 말을 듣고 견결히 당을 따라 나아가도록 인도했다. 또 빈곤퇴치를 목표로 곤난종업원들을 도와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조치를 확정하고 종업원들의 정상적인 복리와 후근보장 봉사를 잘하며 명절기간 농민공들의 권익수호봉사 사업을 착실히 전개했다. 올해 온정 베풀기 활동은 부동한 수요의 종업원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조치를 강구했다. 가정수입이 적은 곤난종업원에 대해서는 생활구제표준을 높이고 취업능력이 있는 곤난종업원과 자녀에 대해서는 취업기능을 제고시켰으며 돌발사건이나 의외사고, 중병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워진 가정에 대해서는 알맞는 방도를 찾아 구제를 실시했다. 전 주 각급 공회조직은 2018년 ‘두 명절’ 온정 베풀기 활동 기간 도합 1489만 3800여원의 자금과 물품을 지급하고 1만 2346가구의 곤난가정을 위문했다. 그리고 421개 기업(그중 곤난기업이 126개)을 방문하고 675명의 생활이 어려운 로력모범에게 보조금을 지급했으며 6820명의 일선 로동자를 위문했다. 료해한 데 따르면 올해로 27번째를 맞은‘두 명절’ 온정 베풀기 활동에서 전 주 각급 공회조직은 26년에 걸쳐 도합 1억 6300만원의 자금을 투입해 7000여개 기업을 방문하고 33만여가구의 곤난종업원 가정을 위문했다. 온정 베풀기 활동은 공회조직의 종업원 방조 사업 특히는 곤난종업원 부축 사업의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윤녕 기자
훈춘 올해 대상 270건 실시, 투자 2009억원
8일, 훈춘시 2018년 제1차 중점대상 건설 관련 부지 접목회가 시정부에서 개최됐다. 회의에 따르면 올해 훈춘시에서는 270건의 대상을 계획, 추진하게 되는데 투자규모가 2009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그중 투자액이 1억원 이상인 대상이 177건, 10억원 이상 대상이 36건에 달하고 공업 관련 대상이 103건, 봉사업 관련 대상이 53건, 공상업, 부동산 관련 대상이 11건, 기초시설 대상이 47건, 민생사업 관련 대상이 21건, 농업 관련 대상이 12건이다. 연변대학 훈춘캠퍼스, 해면도시, 민족국제화원호텔, 권하통상구 련합검사청사, 다국경 무역(전자상거래) 종합봉사산업단지, 훈춘 굉이달신발제조공장, 국제 현대농업과학기술 시범단지 등 72건 대상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계속 건설된다. 그리고 력청탄정결화 종합리용, 철룡국제물류항, 길림-훈춘 천연가스도관망 건설, 재부쎈터, 밀강향 전원종합건물, 전민 건강쎈터 등 96건 대상이 새롭게 건설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빙설소진, 시범구 민용공항, 인삼산업단지, 시범구 국제물류단지 기초시설, 붕발그룹 관광건강양생쎈터, 유기야채재배기지 등 102개의 중점대상도 올해 대상건설 범위에 포함됐다. 이번 부지 접목회는 훈춘시 중점대상 건설의 보고 및 비준 진척을 일층 가속화하고 중점대상에 관련된 부지를 힘써 보장함으로써 대상건설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담보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대상건설 책임단위에서는 국토, 수리 등 관련 부문과 긴밀히 배합하고 서로 지지하며 중점대상 건설을 보장하는 원활한 소통과 긴밀한 협력 기제를 마련해야 한다. 전방위적인 련합 추진 기제를 구축해 대상건설의 부지를 담보하는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고 대상건설의 전단계 사업 책임제를 실시하여 정부 해당 부문에서 각 책임단위의 전단계 사업을 실시간으로 파악함으로써 일부 고리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원인으로 제반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회의에서는 또 대상건설 관련 부지의 보고 및 비준 절차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법에 따라 부지를 선택 및 활용하는 의식을 수립하며 건설용 부지를 법적으로 담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훈춘시는 대상건설 요구에 따라 질과 량을 담보하는 전제에서 관련 서류들을 수집, 정리하여 3월말 전까지 대상건설의 전단계 사업 임무를 80% 수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서로 소통하고 주동적이고 전방위적인 추적봉사를 하는’ 사업모식이 중점대상의 순조로운 착공과 지속적인 건설에 토대를 다질 뿐만 아니라 기본농토 보호책임제, 용도관리기제, 심사 및 평형, 품질보호 등 각항 보호제도를 착실히 관철하는 사업도 촉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복 기자
설기간 안전운행이 최우선…
9일, 연길시 음력설 려객수송 교통관리 사업 정황소개회가 연길시공안국 교통경찰대대에서 있었다. 연길시공안국 교통경찰대대 경찰과 연길시공공뻐스집단유한회사, 연변동북아려객운수집단유한회사의 책임자가 소개회에 참가해 음력설 려객수송 정황을 설명했다. 소개에 따르면 연길시에는 현재 매일 506대의 공공뻐스가 운행되고 있는데 공공뻐스 리용객이 매일 연인수로 12만명에 달한다. 모든 뻐스에 대한 안전점검이 이루어졌고 문제가 있는 17대 차량을 보수했으며 운전기사들이 안전운행을 첫자리에 놓도록 인식을 제고시켰다. 연변동북아려객수송집단은 2월 1일부터 8일까지 2000여회의 뻐스를 동원해 2만 1000여명의 려객을 수송했다. 연변동북아려객운수집단 안전처 처장 임립휘는 “회사에서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에 150여명 운전기사에게 위챗으로 문자를 발송하여 안전운행을 강조하고 GPS장비를 통해 운전자의 흡연, 핸드폰 사용 등 규정위반 행위를 엄격히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길시공안국 교통경찰대대에서는 음력설 려객수송 기간 전체 인력을 투입하여 도로교통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연길시공안국 교통경찰대대 선전중대 중대장 조영의는 “지금까지 교통안전 형세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음력설 려객수송 기간 매주 금요일마다 야간검사를 통일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음력설 련휴기간에도 전 시 506명 교통경찰이 집법근무에 투입되는데 중점구간과 중점차량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게 된다.”고 밝혔다. 연길시공안국 교통경찰대대에서는 관광뻐스, 려객수송뻐스, 위험화학물과 민용 폭발물 운송차량, 학교 뻐스 등 운영 기업에 내려가 업체 책임자와 운전자들의 안전의식을 제고시키고 차량 점검사업을 잘해 안전우환을 미연에 제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강철 기자
연변, 음력설 맞이 하례모임 마련
12일, 주당위, 주정부는 연길에서 2018년 음력설맞이 단체하례모임을 마련했다. 전 주 각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를 마시며 음력설을 경축했다. 성당위 상무위원이며 주당위 서기인 강치영이 출석하여 연설을 하고 주당위 부서기이며 주장인 김수호가 사회했다.       강치영은 주당위, 주정부를 대표하여 전 주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명절의 문안과 축복을 전하고 전 주 리퇴직 로간부, 연변주둔부대 장병, 무장경찰부대 장병과 공안경찰, 연변의 발전을 관심하고 지지하는 각계 인사들에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와 숭고한 경의를 표했다.     강치영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지난 1년은 연변의 발전려정에서 극히 특수하고 예전과 다른 한해였다. 당중앙, 국무원의 친절한 관심과 성당위, 성정부의 정확한 령도하에 전 주 상하는 일심단결하고 분발진취하고 난관을 극복하면서 제반 사업이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도록 추동했다. 전 주 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총량은 1000억원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 있다. 빈곤해탈 난관공략에서 판을 뒤집는 싸움을 했는바 1만 8000명의 농촌 빈곤인구가 안정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고 120개의 빈곤마을이 빈곤의 모자를 벗었다. 인민의 생활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민생분야의 투입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치주 창립 65돐을 열렬히 경축하고 민족단결진보 사업이 새로운 열매를 맺었다. 당을 전면적으로 엄하게 다스리는 것을 깊이 추진하고 청렴하고 바른 기풍이 더욱 농후해졌다. 우리 주는 ‘관광흥주’ 전략포치를 내리고 록색전환의 템포를 다그치는 데 새로운 경로를 열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주입했다. 여러 류역에서 나타난 백년일우를 초월하는 특대홍수에 맞서 우리 주는 군중의 생명안전을 우선적인 위치에 놓고 홍수대처 재해구조와 복구건설의 중대한 승리를 전취했다. 일련의 곤난과 도전 앞에서 전 주 여러 민족 인민의 마음은 더욱 긴밀하게 련결되였고 단결분발하는 열정이 더욱 충만되였으며 도약하고 추월하는 신심이 더욱 견정해졌다.     강치영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2018년은 19차 당대회 정신을 관철, 시달하는 첫해이고 개혁개방 40돐이 되는 해이며 초요사회 전면 실현의 결정적 승리를 이룩하는 관건적인 한해이다. 우리는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상과 19차 당대회 정신을 인솔로 ‘5위1체’ 총체적 포치를 총괄적으로 추진하고 ‘네가지 전면’ 전략적 포치를 조화적으로 추진하며 중앙과 성당위의 제반 요구, 포치가 시달되고 뿌리내리도록 추동하고 새시대 연변발전의 새로운 장을 힘써 써내려가야 한다. 발전의 주요임무를 단단히 틀어쥐고 더욱 힘을 집중하여 ‘관광흥주’ 전략을 추동하며 더욱 견정하게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더욱 유력하게 민생을 보장, 개선하며 더욱 효과적으로 변강의 조화, 안정을 수호하고 더욱 깊이 당풍정풍을 개선하며 여러 민족 군중으로 하여금 더욱 많은 혜택을 향유하고 더욱 많은 획득감, 행복감, 안전감이 있도록 해야 한다. 단체하례모임에서 연변가무단에서 다채로운 음력설맞이 문예공연을 선보였다. 주당위 상무위원, 주인대 상무위원회, 주정부, 주정협, 주중급인민법원, 주인민검찰원, 주림업관리국 등 부문의 주급 지도자, 일터에서 물러난 주급 현직 지도자, 원 주급 로지도자, 19차 당대회 대표, 전국인대 대표, 전국정협 위원, 주 직속 부문, 단위 주요 책임자, 부분적 중앙, 성 직속 단위 주요 책임자, 연변주둔부대, 무장경찰부대 대표, 사회 각계 대표, 홍수대처 재해구조 선진 집단과 개인, 로력모범 대표, 부분적 중점기업 책임자가 이날 단체하례모임에 참가했다.   김군 기자/사진 윤현균 기자
대지의 아들 황대년
필경은 ‘범위’ 안의 사람들인지라 의연히 신중하고 소심하였으며 이미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할지언정 지뢰밭을 반보도 내디디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황대년의 생전의 동사자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황대년이 화를 낸 적이 있는가고 물으면 그들은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황대년의 비서 왕욱함을 만나서야 황대년이 과제 구성원들의 사업태도 문제로 ‘핸드폰을 메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보배라도 얻은 듯한 기분이였다. 과학을 위해서라면 황대년은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지질궁 옆의 기계창고에 찾아가 시범비행에 성공한 견본용 기계 앞에서 철거팀이 갑자기 들이닥쳐 기계창고를 허물어버리려 할 때 황대년이 다급한 마음에 트럭 앞에 드러누운 모습을 상상하면서 어망결에 당시 황대년이 어디에 누웠댔는가고 물었다. 초건이 문 앞의 세멘트바닥을 가리키며 "저곳입니다, 바로 저곳에 누웠더랬어요."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순간 우리도 그 빈땅을 멍하니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람들의 내심을 늘 들뜨게 하고 힘들게 했던 시대에 그의 근본과 개성은 얻기 힘든 것이였고 귀중한 것이였다. 이게 바로 이 사회가 부르짖는 고결함이고 우리 세대 지식인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량심이고 책임이 아니겠는가?! 황대년을 탐방하면서 우리도 그의 친구를 알게 되였다. 황대년의 조수 우평은 무의식중에 시일공이 황대년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밤도와 여러 곳을 련결해 의사들의 합동진찰을 받게 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부동한 연구분야에 몸을 잠그고 있으며 귀국 전에 만나지도 못한 두 ‘천인 계획’ 전문가가 어떻게 되여 이와 같은 두터운 우정을 쌓게 되였는지가 매우 궁금하였다. 시일공을 취재하기 위해 우리는 거의 10일 동안 날마다 련락하였지만 번마다 "바빠서 후에 련락하겠다."는 메시지만 보내왔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11시에 시일공이 전화를 걸어와 "참으로 미안합니다. 이 기간 연구내용이 상당히 관건적이여서 밥을 먹는 것도 초로 계산하였다."며 해석했다. "초로 계산한다"는 말에 우리는 ‘시간을 아끼고 생명을 아끼지 않은’ 황대년이 떠올랐다. 다 같이 이름을 날리고 성공한 똑같은 ‘과학연구 미치광이’였다. 시일공은 같은 목표와 마음이 서로를 가까이 하게 했다며 귀국한후 같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하였고 그때마다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었다고 말했다. 후에 송별이야기를 하면서 시일공은 떨리는 목소리로 "무한한 충실성을 갖고 일하던 사람이 이렇게 떠났다…"는 한마디를 하였다. 우리는 더 묻지 않았다, 더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조국에 보답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큰 뜻을 아직 이루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는 것보다 더 애속하고 아쉬운 것이 있겠는가?! 그들의 몸에는 애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애국도 있고 능력도 있으며 이들은 애국의 리상과 과학의 추구를 완벽하게 결부시킨 사람들이다. 동수문은 우리 나라 심부탐측대상 수석과학가이다. 처음에 그와 황대년의 사망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감성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황대년의 과학연구 체제에 대한 기여와 과학연구 난관공략에 대한 혁신에 대해서는 일일이 말해주었으며 지어 많은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고 말하려 하지 않은 황대년의 과학연구 체제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모두 알려주었다. 황대년은 과학연구 진척 속도에 조급하고 일에 비해 사람이 많다며 무턱대고 동수문과 따진 적이 있었다. 우리는 지도일군과 학술권위 이중신분을 소유한 동수문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황대년을 배척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수문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온 일에 대해서 당시 어떻게 황대년을 위로하고 또 어떻게 그를 지지해주었는가에 대해 말해주었다. 순간 우리는 내심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과학의 앞에서 실사구시하는 데 놀랐고 세속을 초탈한 처세술에 놀랐다. 우리는 동수문에게 "과학탐구에서 황대년의 발광에 대해 어떻게 리해할 것인가?" 고 물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우리들을 순간적으로 납득시키는 대답을 주었다. "과학자는 반드시 이런 격정이 있어야만 혁신의 구동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지질학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산에 오르기 전에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반월판에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나의 반월판은 다 찢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평생 하는 일이 자신이 원하는 일이였기에 행복합니다. 대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일생에 자기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몇번 만났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일인 것입니다." 말을 마친 동수문은 자부심을 느끼며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탐구자의 당당함이 있었고 또 보국자의 진정함도 있었다. 그 시각 우리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는 그의 몸에서 황대년을 보았고 ‘중국에 항상 넉넉한 미치광이 과학자’ 군체를 보았다. 우리는 어쩌면 그들의 과학을 리해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심령과 력량은 깊게 리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치 하루밤 사이에 하나의 열쇠를 찾은 듯이 황대년에게 다가갔다. 더 이상 문자의 어떤 수식도 필요 없었다. 이야기들이 마음과 글중에서 술술 흘러나와 마치 맑은 시내물마냥 그의 순수한 령혼을 비춰주었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꿈속에 빈번히 나타나는 습작경력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공항에서 혼자 영국생활과 조용히 작별인사하는 황대년, 지질궁을 개축할 때 한손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른 한손으로 대야를 들고 비를 받는 황대년, 들놀이에 나가 땅에 무릎을 꿇고 모두에게 사진을 찍어주느라 땀에 잔등이 흠뻑 젖은 황대년, 학급담임교원으로 있을 때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사주고 간행물을 주문해준 황대년, 프로젝트를 회보하기 전에 속효구심환 한줌을 입안에 집어넣는 황대년, 며칠밤 련속 분투한 후 땅바닥에 쓰러지고는 학생들더러 소문을 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던 황대년… 우리는 꿈속에서 황대년의 곁에 있었고 묻고 싶은 말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어디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현실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한 꿈의 세계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뒤엉켜있었다. 우리가 재삼 노력하였으나 장염은 인터뷰를 접수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타인의 진술을 통해서만도 황대년의 이야기는 사람들을 충분히 가슴 아프게 하였다. 그들은 인생길에서 서로 이끌면서 여태껏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다. 황대년은 될수록 시간을 짜내 장염을 데리고 학교에서 조직하는 활동에 참가하였고 안해를 위해 사진을 찍어주며 두 손을 잡아주었다. 더 많은 시간을 안해와 함께 보내기 위해 만약 당일에 돌아올수 있는한 그는 늘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공항,역전으로 달려갔다. 황대년이 돌아간후 장염은 대년만을 지키였고 더는 바깥세상과 접촉하지 않았다. 이런 일종의 시한부인생은 시시각각의 그리움보다 훨씬 의리 있고 정이 깊어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할 때마다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우평은 황선생님의 유일한 한쌍의 정장구두와 한벌의 정장 양복은 어느 한번 외국에서 열리는 회의 때 서둘러 산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는 정장을 입을것을 요구하였다. 황선생님은 원래 이전의 방법대로 현지를 관할하는 친구의 정장을 빌려 입으려 하였으나 자신의 사이즈와 같은것이 없는것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한벌을 살수밖에 없었다. 이같은 공리화한 사회에서 황선생님은 몇억원의 대형 프로젝트를 취급하는 사람이였지만 소박하고 초연한 생활을 하였다. 이처럼 소박한 사람이였지만 학생들의 집에 곤난이 있다면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지원해주었는데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는 모른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아도 몇사람이 그처럼 할수 있겠는가? 때문에 황대년의 학생들은 "선생님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황대년은 그에게 다가오는 매 사람들에게 일종 심령의 감동과 일종 정신의 세례를 안겨주었다. 황대년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생명의 빙점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령혼에 불을 지폈다. 항상 깊은 밤중에 황대년을 마중하고 바래다주던 류국추는 아주 소박하다. 그는 "우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는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지만 황선생님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가요? 나는 황선생님과 별로 말도 없었습니다. 황선생님은 차에 오르기만 하면 항상 잠이 들었지만 나는 그가 큰 인물이고 돈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라는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사업하였지만 돈이 있어도 돈을 쓸 운명은 아닌가 봅니다."고 말했다. 류국추의 말은 우리의 심령을 찔러놓았다. 류국추는 의연히 황대년과 번갈아 사용했던 그 베개와 담요를 보관하고있다. 깊은 밤에 일하러 갈 때면 아직도 그 베개와 담요를 사용하고있다. 그는 "황선생님의 골회가 아직 장춘에 보관되여 있으니 만약 어느날 그의 골회를 고향에 가져가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가려 하지 않으면 내가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길림대학 예술학원의 요립화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한번 황선생님을 "강박"하여 오락활동에 참가시킨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황선생님을 위해 "홍하곡"이란 노래를 신청하였다. 황대년은 노래가 끝나자 아주 기뻐하며 주동적으로 "전우를 보내며"란 노래를 또 신청해 불렀는데 이 노래는 그날 저녁 황선생님이 신청한 유일한 한곡의 노래였으며 감정을 다해 부른 노래였다. 그때 요립화가 "황선생님, '기러기'란 노래를 꼭 배우세요. 선생님의 카리스마와 잘 어울리는 노래입니다"라고 말하자 황선생님은 오히려 쑥스러워하며 "요선생님, 사실 나는 그래도 "나는 중국을 사랑한다" 노래를 제일 좋아합니다. 이 노래를 꼭 배울것입니다."라고 말했다. (48)
녀성 아동의 행복감 부단히 제고
8일, 주부련회 11기 5차 집행위원회의가 연길에서 있었다. 회의는 주부련회 2017년 사업을 돌이켜보고 2018년 중점사업 임무를 포치했다. 2017년 전 주 각급 부련회조직은 전 주 녀성들에게 19차 당대회 정신을 적극 선전하고 대오건설을 보완하며 기층에 심입해 봉사하고 사회조직 육성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개혁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여러가지 양성반을 15기 조직하여 600여명의 녀성을 양성하고 9380세대의 ‘아름다운 정원’과 1만 7570세대의 ‘깨끗한 가정’이 용솟음쳐나왔다. 여러가지 대출금 7885만원을 지급하는 등 조치에 힘입어 1000여명의 녀성이 창업 취업에 나섰고 녀성 전문 초빙회 97차례가 열린 가운데 600여명의 녀성이 취업에 성공했다. 가정문명 건설을 강화하고 녀성, 아동 권익 수호와 민생사업을 지속적으로 틀어쥐는 사업에서는 전 주에 ‘녀성, 아동 권익 수호 합의정’ 15개를 설립하고 1만 6000명 녀성에게 ‘두가지 암’ 무료검사를, 150명 빈곤녀대학생에게 무료건강검진을 해주었고 46명 빈곤녀성환자에게 26만원의 구제금을 조달했다. 2018년 전 주 부련회는 계속하여 19차 당대회 정신 학습, 선전, 교양을 틀어쥐고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상으로 두뇌를 무장하여 부련회 사업의 혁신과 실천을 지도하며 ‘록색궐기 녀성행동’을 전개하여 연변의 진흥발전을 위한 로정에서 광범한 녀성들이 지혜와 힘을 이바지하도록 인도하며 사회주의 가정 문명의 새 풍모를 형성하고 부련회 개혁 난관 공략전에서 승리를 이룩하며 녀성, 아동의 획득감과 행복감을 부단히 제고하게 된다.   한옥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