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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가찹소!”

사노라면 

여직 야행성으로 자주 등반했었다. 홀제 산이 무척 달라졌다. 느낌에서 눈에서 그토록 아득하던 요원함이 언젠가부터 절근해졌다. 바로 오늘부터다. 지금 ‘죽 이야기’라는 카페테리아 같고 함바식당 같은 부스에 혼자 퍼더버리고 앉아 갓 홀로 하산한 뒤풀이를 역시 홀로 치른다.

딱 일년 전인 2017년 3월 14일, 오랜만에 친구의 회식청구로 이 로열박스에 마주앉아 맛갈스럽게 전복죽을 겸상했었다. 회식에 습관되지 않은 나와 감히 한끼 사달라는 제의에 못내 생광스러웠다. 2009년 1월 9일 이 가게문전에서 만나 9년 만에 다시 들린 두번째 단골이다. 세월의 정한을 섞으며 독지가를 알기까지 친구는 팀플레이를 충당해준 리더십이였다. 교제가 희박한 나로서는 붕우의 의미를 포향의 또 다른 귀속체로 응축한터이다. 그날 미팅도 대화 주제는 당연히 산이였다.

“밤에 밤쥐처럼 혼자 등산 말라! 의외사고도 위험하니···”

며칠 동안 초췌하고 깡마른 친구가 터갈라진 입술을 놀리며 간신히 내뱉었다. 여러해 동안 벼르다가 권장한 종용이란다.

“점령하는 승부욕으로 완주하느라 밤에 출발하는거야!”

나의 막무가내 고집에 송곳이를 드러낸 친구가 나중엔 차차 산을 가깝게 지니라고 충고한다. 왼손으로 수저를 놀리는 프로필이 ‘홍분’처럼 유표하게 안겨온다···

그러던 중 2018년 3월 11일 일요일, 하반구역아빠트 1단원 12층을 방문했을 때 박금숙 자당께서도 역시 같은 말씀을 되풀이할 줄이야···

“정선생, 매나니 왜 밤에 자꾸 산을 다니오? 오작교도 코앞이요! 내 생일이 칠석날인데··· 난 일부러 매일 견우직녀를 본다오. 맘에 늘늘히 두면 산은 가찹소!- 지척이니··· 막내와도 생전에 지금 그렇게 타일렀으니··· 죽어도 꼭 이룰 걸.”

1931년생 닭띠로 올해 88세 로익장이시지만 자식의 미래를 점지하는 선견지명에 사뭇 충격을 받았다. 순간 뇌리를 치는 착상에 뭉클해났다. 한생을 막연하게 응시하던 뫼가 졸지에 축지법으로 줄줄이 달려와 인형으로, 캐릭터로, 스티커로 올망졸망 버글거리는게 아니겠는가?! 어쩌면 거리적인 소원의 무형이 나를 차단하고 격리했다는 발견에 소스라쳤다. 꿈도 뜻도 기획도 너무 거창하게 기틀을 잡아 기회를 놓치고 시간을 소모한데 대한 성찰의 반전이다.

장구지책의 또 다른 페단은 외람지게 집착해 뜸을 들일새 없이 낚시줄을 길게 늘여 고래를 혹은 상어를 포획하려는 강태공인지도 모른다. 가볍게 홀가분히 속결전을 치를 현실성도 체크와 타산을 밀집시킨 통에 적중률을 놓친 사례로 좌초를 겪는다. 타이밍이 따로 있다는 말의 효용이렷다. 적지적수(适地适树)인데 식재분재가 시처위를 탈선한 건 물론 그 숙운의 잠시 자충수이지만 말이다.

메갓이 가직하다는 새 인식은 내가 세운 목표를 향한 기착지에로의 빡센 접근을 탐낸 것이다. 면막한 지리적 위치의 터부시이자 원근을 조률한 심리평형이다. 아직도 물론 마지막 페지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기에 산은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오라고 청신호를 보낸다. 걸음이 날렵하고 배낭이 가볍다. 산을 호주머니에 먼저 챙겨넣고 수림에 들어서니 태양도 요지경으로 돌린다. 콤팩트에 들지아니한 금강석은 외장이 현란해도 표출로 잠재된 불화를 엄닉한 것과 비근하다. 버리면 아예 무용지물이다. 허무의 현념에 시달리며 마냥 망자존대를 표방하다가 조난, 객사, 단명을 초래한 악과다. 리미트에 밀린 불찰의 의심이 일초일목으로 매달린 숲은 처연하다. 한뉘 민둥산에 미련을 허비하다가 상상봉의 오르가슴을 모른채 불능불구의 함정에 영면하는 무주고총처럼 말이다.

룡두사미마냥 사사건건 자주성이 전무하고 업무가 부진하며 일찍이 한쪽 부모를 잃어 륙친의 덕이 없는 친구의 경력이다. 그래서 절근하게 조처하라고 나를 귀띔한다. 금전탕진자도 수수방관했 듯이 잠입된 적막에 부부사별의 만년을 직면한 위기교훈이란다. 이 무렵 자연에 널린 산을 뜰의 한그루 정원수로 모셔온다. 동뜬 야외에서 광료한 토템을 덧씌운 중과부적에 우리는 작히나 지쳤던가?! 생결할 때 알게 될 후회는 전생의 팔자이다.

“산이 가찹소!”

그번의 만남이 로인님과의 마지막 상봉이여도 긴 춘추를 누빌 교시로 재생될 것이다. 톱니 같은 잔풀에도 살갗을 썰린다. 지금은 시기상조처럼 경원시하나 나중엔 감오하고 귀의처를 달리할 주소를 그루마다 베껴 옮긴다. 산에 들어서니 정감이 이웃이고 사념이 친근하다. 낮달에 얽힌 쌍어궁은 오늘도 두마리의 물고기가 끈으로 묶여 있는 모양이다.

달은 벗겨달라고 몸을 드러내고 어둠은 덮어준다고 베일 가린다. 탈의실에서 수의를 교체한다. 윙크 천번에 날이 새고 태질 한번에 안개 걷힌다. 하염없이 불풍나게 드나드는 입구에 달 입술이 닳아 매니큐어가 바래지니 별이 대신 그 자리에 청보석을 물들이는 새벽 릉선이다. 녀신은 드레스자락을 스쳐 부활을 석권한다. 살롱무드가 일렁인다. 멀어서 찾아가 듯이 가까워도 그립다.

이번에 관목림에 입장해 산신령에 어필한다. 리공양은 물질을, 경공양은 마음을, 행공양은 행함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과정과 수단과 목표를 향한 지향조차 정답으로 좁혀진 듯하다. 피정(避静)에 안존한 기분이다. 문득 울컥 눈물이 솟는다. 내 것이기에 다 가지려 서둘렀고 빨리 챙기려 감질냈던 것이다. 하여 그 산에 이미 이불과 요를 갖다놓았다. 동방화촉은 주야로 장명등을 켜고 오픈한다. 나의 안식처로 점찍은 영주지이다. 망연하다 말고 우선 산에 입주하면 나 또한 어느새 천봉만악의 분신이 될 테다.

그렇다. 밀산(密山)으로 옹근 덩어리를 떠다 놓았다. 멀지 않았다. 산을 옮긴 우공이 장하다고 칭찬한다. 어느덧 ‘먼게 흠이다’는 소경의 설화전설이 떠오른다.

중매군의 연줄로 처녀총각이 선보게 됐다. 그런데 매파가 하는 말이 처녀가 너무 멀어 어쩌겠나 걱정한다. 그러자 총각이 멀면 말 타고 가련다고 했다. 과연 백마를 타고 혼처에 닿아본 즉 처녀는 아주 멀었다. 고개 넘어 물 건너 길이 먼게 아니라 눈이 멀었다. 장님이였다. 그렇게 멀게 보이지 말고 분명하게 지호지간(指呼之间)에서 포착하고 상망지지(相望之地)로 진척될 때 덜 지치고 꽤 뻐근할 것이다.

천년의 기다림, 피치 못할 정사(情死)는 망혼으로 진행된다. 반등의 완성이다. 무엇이나 늘게 잡지 말고 결단할 고비사위에선 탕개를 조일 때 성공도 뒤따른다. 벼리는 손에 쥐였는데 당기지 않았으니 엉성할 수 밖에 있었겠는가?! 낚으라, 잡아채라! 그래도 당겨오지 않으면 아예 너를 통채로 그 대상물에 심어놓으라! 엉키고 얽혀야 밀봉이다. 느루 잡지 말고 팽팽하게 조이라!

“산은 가찹소!”

래일도 주봉에서 웅얼거릴 다이얼로그를 발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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