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뉴스속보 > 뉴스속보
뉴스속보

 

 

기자의 사명은 변하지 않는 것…

사노라면 
15224687986043.JPG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장정일

 
지난 23일 만난 전 주 민족문화 전승 발전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장정일(74세)은 “돌이켜보면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나온 기자생활 32년은 나에게 참 많은 것들을 선물해줬다. 서툴게나마 문학인생을 살고 있지만 나는 직업상으로는 후회없는 기자인생을 살았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난 세기 1971년, 당시 연변대학 어문학부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지식인 재교육"을 받으며 석현제지공장에서 원목장로동자, 선전부간사로 근무하던 장정일은 연변일보사 전근령을 받고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변일보》는 주로 신화사 기사 번역문으로 채워졌었다. 시일이 지나서 지방기사가 다루어지기 시작했고 장정일은 농촌보도 실습을 시작으로 정치문교조 편집기자, 리론부, 중요뉴스부 편집으로 활약했다.

워낙 문학에 흥취를 갖고 있던지라 취재를 하고 기사를 집필하는 과정은 젊은 그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일 속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는 기자정신이나 언론사업에 대해 깊은 료해가 없었다. 신문학리론을 새로 습득하는 한편 주로 실천을 통해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이였다. 특히 선배들이 몸소 가르치는 기자정신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고 한다.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는 글 한편이 있다. 바로 작고하신 연변일보사 전임 총편집 오태호의 개혁개방직후의 글이다. <소의 코와 꼬리의 해방>이라는 그리 길지 않는 문장 한편이 당시 신문 2면에 실렸었는데 읽고나서 충격을 받았다. 형식적으로는 소의 수난을 썼으나 섬세한 관찰력으로 당시 정치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피페해진 농촌과 사람들의 마음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기자의 눈’이란 무엇이고 기자는 어떤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그때 참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그는 이어 선배인 황순명 부주필에 대해 회억하면서 “선배들에게서 들은바로는 50년대 당시 시대상황에서 선배님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어 순결화’에 대한 글을 썼었는데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그 글은 나에게 언어에 한정된 론의가 아니라 민족 문화와 령혼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안겨왔다. 그 글로 인해 황선생은 비판을 받았었다고 전해들었지만 진정한 기자정신을 보여준 본보기로 후배들의 마음에 남아있다.”고 말했다.

1984년 부총편집으로 발탁된 장정일은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사업에 정진했다. ‘목표는 높게 그러나 시작은 작게.’ 그는 모든 일에서 이 같은 생활신조를 지켰다. 신문을 꾸리는 일에서도 례외가 아니였다. 뭐든지 단술에 배를 부릴 수는 없는 법, 하나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 그러나 큰 목표를 바라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부총편집의 직책을 맡기 시작한 후로 그는 우선 ‘건국 35주년 문학콩클’을 조직해 《연변일보》 문학작품공모를 시작했으며 그것이 그대로 ‘해란강 문학상’ 전신으로 됐다. 동란을 겪었던 많은 기성작가들과 신진들이 수상의 영예를 지니였다. 1984년 그해에 또한 《연변일보》 중점작가 모임을 열어 문학교류를 증진함과 동시에 큰 몸살을 앓고 나서 피페해진 문단에 생기를 부여하고 작가들의 창작열을 불러일으키는데 일조했다.

1985년에는 갓 창간된 길림신문(3년동안 연변일보 주관) 보도업무를 주관했고 1986년엔 다시 연변일보로 돌아와 신문 1면에 발 빠르게 시평란- ‘사색의 여울목’을 신설해 뉴스와 론설이 쌍바퀴로 굴러갈 수 있도록 신문의 균형을 잡는데 이바지하였다. 또 언론의 역할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 몇년후엔 3면에 사회필진 칼럼란- ‘국자가’를 설치해 론설과 문예성을 결부한 칼럼의 정착과 발전에 나름의 노력을 경주했다.

“기자에게 제일 고귀한 것은 사회흐름과 호흡을 같이하며 사회현상을 잘 짚어내고 음미하면서 좋은 것을 찬양하고 나쁜 것을 타매하는 감명깊은 글을 써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자의 자세다.”

그는 자신에게 늘 이렇게 요구해왔을 뿐만 아니라 동료 기자나 후배들에게도 이 같은 자대로 요구했다.

“요즘은 매체들이 급속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따라서 종이매체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많으나 뉴디미어의 활발한 응용은 매체의 영향력이 확대된 것일 뿐 그렇다고 종이매체의 작용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내용을 승화하고 질을 추구한다면 언론의 다양한 시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장정일은 이와 같이 말하면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대중들의 지향은 변하지 않는다. 신문에 기층 백성들의 삶을 포착하는 기사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격동의 현실을 담아내며 력사를 쓰는 것이 신문이다.”고 짚었다. 

글,사진/박진화 기자
 

 


본 사이트内 모든 게시물은 회원작성과 인터넷 자동수집 정보입니다. 정보의 진실여부는 조선족 정모와 전혀 관련이 없읍을 알려드립니다.
Facebook KakaoStory GooglePlus Twitter
네이버블로그에 공유
댓글반응 0